주 메뉴 열기

농서 이씨는 고려 중엽 성주에 기거하는 장경의 손자 승경이 원의 요양 성 참지정사가 되어 원 황제로 부터 봉칙을 받아 농서 이씨 성을 하사 받고 조부인 장경에게 농서군공을 추증함으로 농서이씨가 생기게 되었다. 농서 이씨의 비조인 장경은 원래 신라 말의 재상인 순유의 후손으로 순유는 경순왕 대의 재상, 즉 시중으로서 고려 왕건에게 신라 사직을 넘길 것을 반대하며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의 결사항전을 도모하며 그의 아우 돈유는 마의태자를 따라 북상하여 신라 수복의 운동에 헌신하고 순유는 왕건의 신라 권신들의 분산 정책에 따라 성주로 유배되어 유폐생활을 시작하며 이름을 극신으로 고치고 신라의 왕으로 자처하였다. 그 후 12세에 이르러 장경이 합천군수 이약의 사위가 되고 그의 다섯 아들이 고려 조정에 벼슬하여 가문이 중흥되며 합천 이씨인 처가의 성을 빌어 사도에 올랐다가 손자인 승경이 원 조정에 벼슬하여 요양참지정사를 맡으며 농서 이씨 성을 가문의 새로운 성으로 정립하여 이로부터 성주의 장경의 후손은 농서 이씨로 관적이 생긴 것이다. 농서 이씨는 중국의 대성으로 당의 황실이 농서 이씨이며 당과의 동맹국인 신라의 후손으로 당의 종성을 하사 받는 것은 신라의 영예로운 일이며 이는 신라 왕족에게나 가능한 사성제이다. 성주에는 예로부터 여섯 이씨가 있었는데, 농서,경산,광평, 성산,벽진,가리 이씨이다. 이들 중에 농서 이씨를 제외한 성주의 이씨들은 순유의 후손이 아닌 성주 지역의 본래 토민들이었다. 조선조에 들어와 이들 여섯 이씨들이 한 지역에 집중되어 왕명으로 다들 성주 이씨로 단일화 시켰기에 조선조에 성주 이씨가 되었던 것이며 순유의 후손은 농서 이씨가 그 본래의 성씨이다. 하나 순유는 농서 이씨가 아니다. 원제국의 황제가 칙명을 내려 장경에게 농서군공 이씨를 추증하였기에 장경이 농서 이씨의 시조이며 순유는 신라의 왕족으로 국성인 김씨가 본래 성이다. 신라가 망하며 성도 이름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 국성인 김씨를 보전하기가 어려웠고 순유는 그 어원이 신라 건국 초의 허루왕에 있다. 신라의 초기 왕제는 집단 통치제로 왕과  허루왕들이 권력의 중심 집단이며 이는 후에 성골집단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조에 들어 신라 망국의 유민으로 삼백년을 초야에 묻혀 살다가 장경의 대에 이르러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되며 신라 왕족의 혈계에 대한 통제가 풀어지며 마침내 정사에 나아가는 길이 열렸고 이에 장경의 다섯 아들이 다 조정에 임용되어 중책을 맡으며 당시의 성씨가 정해지지 않아 임시로 장경의 처가 성인 합천 이씨를 가문의 성으로 삼았다가 승경에 이르러 가문의 염원인 새로운 농서 이씨 성을 세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