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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시작 전인 이듬해 1942년에 일본 정부가 발행한 대동아 전쟁 국고 채권 (전쟁 국채). 전후 인플레이션으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대동아 전쟁(일본어: 大東亜戦争 다이토아센소[*], 영어: Great East Asia War)은 일본 제국미국 · 영국 · 네덜란드 · 소련 · 중화민국 등의 연합국과의 사이에 발생한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호칭이다. 이 호칭은 1941년 12월 12일에 도조 내각이 지나사변 (중일전쟁)을 포함하여 대동아 전쟁이라고 각의 결정했다. 패전 후에 연합군 최고사령부 (GHQ)에 의해 전시 용어로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등으로 단어가 바뀌어 사용되었다. GHQ의 지정은 현재는 폐기되었지만, 역사학, 역사 인식 문제 등으로 이 전쟁의 호칭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동아'라는 호칭편집

1938년 제1차 고노에 내각이 발표 한 중일전쟁의 목적을 발표한 동아신질서 성명에서는 '대동아'는 사용되지 않고, 1940년 7월 26일 제2차 고노에 내각에 각의 결정된 기본 국책 요강에서 '대동아'의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또한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 장관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담화를 발표했다.

사용 금지편집

1945년 8월의 포츠담 선언 수락 후에도 대동아 전쟁의 명칭은 잠시 사용되어 1945년 11월 24일에는 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이 '대동아 전쟁 조사위원회 관제'를 공포하였다.

그러나 1945년 12월 15일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각서를 발표했다. 이 중 대동아 전쟁 등 신도 군국주의, 국가주의에 긴밀히 관련된 말의 사용을 공문에서 금지하라고 지령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 부내의 대동아 전쟁 조사위원회 등은 전쟁 조사위원회로 개칭하고 관련 법령의 대동아 전쟁도 모두 전쟁으로 대체했다.

또한 1945년 9월 10일에는 뉴스 배포에 대한 각서, 9월 19일에는 프레스 코드 (신문 약관)가 발표되어 언론에 대한 GHQ의 규제도 강화되었다.

12월 7일에는 아사히 신문이 태평양 전쟁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1952년 4월 11일에 공포된 법률 제81호에 따라 GHQ의 대동아 전쟁 호칭 폐지 각서는 해지되었다.

호칭에 대한 논의편집

전후 일본은 개전시의 전쟁 목적의 불일치, GHQ의 정책, 역사 인식 문제 등으로 전쟁의 호칭에 대해 다양한 논의와 호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