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주의
도구주의(道具主義, instrumentalism)란 과학철학계에서 쓰이는 말로, 과학이론을, 관측가능한 현상을 조직화·예측화하도록 하는 형식적인 도구·장치라고 여기는 입장이다. 관측가능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관측불가능한 감추어진 실재(實在)의 참모습은 알 수 없다고 여긴다. 이 점에서 과학적 실재론과 대립한다.
도구주의에서는 관측불가능한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형이상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여, 과학의 역할은 아니라고 여긴다. 즉, 과학이론에 의한 현상의 설명·예측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에 의해 「이론이 관측가능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관측불가능한 감추어진 실재에 대한 참(眞)된 기술(記述)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잘 되어 있을 뿐」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도구주의의 하나의 특징이다. 또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이론이 존재하는 경우, 이론의 선택은 그것의 올바름에 의한 것이 아닌, 현상을 얼마나 잘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유용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긴다. 이것은 도구주의가 애초에 「이론의 올바름」, 즉 이론이 실재를 올바르게 기술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계에서 도구주의의 입장을 선명히 한 인물로는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가 있다.[1][2]
비판
편집기적론법
편집과학적 실재론의 입장에서의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힐러리 퍼트넘의 기적론법(argument from miracles)이 있다.[3] 기적론법이란, 만약 전자나 광자라는 것이 실제로 이론에서 기술되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과학의 성공」이 일종의 기적이 되어버린다, 라는 것. 이 기적론법은 다음과 같은 귀추법의 구도를 가진다. 그러므로 설명해야 할 사항으로 「과학의 성공」을 취하며, 이 「과학의 성공」을 설명하는 측의 가설로 도구주의와 과학적 실재론을 병치(竝置)한다. 그리고 도구주의의 의한 「과학의 성공」의 설명은 일종의 기적이 되어버리나, 과학적 실재론에 의한 「과학의 성공」의 설명은 가장 그럴듯한 형태가 된다. 이것이 기적론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