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찬영회(東亞讚英會)는 이토 히로부미안중근에게 살해된 후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표창을 만든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1909년 11월에 민영우(閔永雨)·이민영(李敏英)의 주도로 취지서를 반포하고 발족했다. 장석주의 주도로 며칠 앞서 출범한 이학재이등공송덕비건의소와 연합을 추진해, 함께 10개월 동안 대상으로[모호한 표현] 14만 환을 모금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세워졌으나, 이학재와의 다툼 때문에 이등공송덕비건의소를 탈퇴한 윤진학이 동아찬영회에 들어온 뒤 기존 세력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사업은 시행되지 못했다.

초기에 동아찬영회를 주도한 발기인은 민영우와 이민영이며, 총재는 장석주, 찬성장은 이완용이 맡았다. 민영휘이재곤은 각각 부총재와 회장에 추천되었으나 거절했다.

1910년 초에는 민영우를 내몰고 회장을 맡은 윤진학이 한 명당 10전씩의 모금을 받아 관우남관왕묘와 같은 이토의 사당을 짓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겠다는 내용의 예산표를 만들어 여러 곳에 청원했으나, 협잡으로 의심받아 허가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해 3월, 일본에 세워질 이토의 동상을 탐문하여 동상 건립 사업에 참고하기 위해 임원 세 명을 파견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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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편집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76-78쪽쪽. ISBN 8995330724. 
  • 임종국 (1991년 2월 1일). 〈이또 죽음에 ‘사죄단’ 꾸미며 법석 떨어〉. 《실록 친일파》.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서울: 돌베개. 80~88쪽쪽. ISBN 8971990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