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고 1세 캄파넨시스
드로고(Drogo, 670년/675년? - 708년) 또는 드로쿠스(Drocus, 프랑스어:Dreux)는 프랑크 왕국의 귀족으로 카롤링거 왕조 출신이었다. 부르군트 왕국의 궁재이자, 캄파니아(현재의 샹파뉴)의 공작, 부르군트 왕국의 궁재, 부르군트 공작으로, 아우스트라시아 궁재 피핀 2세와 적처 플렉트루데의 넷째 아들이었다. 카를 마르텔의 이복 형이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1/Drogon.jpeg)
생애
편집프랑크 왕국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헤르스탈의 피핀 2세 또는 뚱보 피핀과 그의 처 플렉트루데의 아들이다. 초기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없으나 690년 그는 캄파니아(현, 상파뉴) 공작으로 지명되었고, 695년 부르군트 공작, 697년 아버지 피핀 2세를 대신하여 부르군트 왕국의 궁재직과 부르군트 공작에 지명되었다.
상파뉴에서의 그는 몽티에르 엔 데흐 수도원과 하우트빌레 수도원(현, 오르트빌 수도원)을 통제,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쟁자였던 네우스트리아의 궁재였던 바라토가 죽자, 아버지 피핀 2세는 바라토와 안세플리드의 딸 안세트루드와 그를 결혼시켰다. 이 결혼에서 3명 혹은 4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그의 결혼으로 피핀 2세의 네우스트리아 내의 영향력은 강화되었다.
한때 그는 생 드니 수도원과 재산 분쟁으로 문제를 일으켜 왕궁에서 그를 고소했다. 힐데베르트 3세는 생 드니 수도원에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1] 697년에는 투소노발 수도원과 노이시 수르 오이세(Noisy-sur-Oise) 빌라에 대한 분쟁을 일으켰다.[2]
708년 봄에 갑작스럽게 사망, 그의 아버지는 그를 메츠의 성 아르눌프 수도원에 매장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부르군트와 캄파니아 공작직은 아들 아르눌프에게 상속되었고, 714년 피핀 2세가 죽자 그의 지위는 다른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각주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편집- Rudolf Schieffer: Die Karolinger. 4., überarbeitete und erweiterte Auflage. Kohlhammer, Stuttgart 2006, ISBN 978-3-17-019099-3, S. 27 f., 32 f., 36 und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