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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ón Folc de Cardona-Anglesola.
조반니 다 놀라가 만든 라몬 데 카르도나의 무덤.

라몬 폴크 데 카르도나 이 안젤솔라 (Ramon Folc de Cardona i Anglesola', 이탈리아어: Raimondo di Cardona, 1467년 – 1522년 3월 10일)는 이탈리아 전쟁 기간에 나폴리 부왕캉브레 동맹 전쟁 기간에 이탈리아의 스페인군을 지휘한 스페인의 장군 및 정치인이다. 그는 1515년 12월 12일에 나폴리 왕국올리베토 백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생애편집

안토니 데 카르도나안젤솔라 이 켄테예스 (Antoni de Cardona-Anglesola i Centelles)와 카스테야나 데 레케센스 (Castellana de Requesens)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제5대 벨푸치 남작, 리뇰라 남작, 우치파파 남작이였고, 세 지역 모두 카탈루냐 지역이다. 그는 아라곤 연합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카르도나 가문의 일원으로 벨푸치에서 태어났다. 1502년 12월 12일에 그는 소마 공작 작위를 수여받았고, 1505년에는 해군 제독으로서 메르스엘케비르 점령전에 참여했었다.

그의 친부라고도 여겨지기도 했었던[1] 아라곤의 왕 페란도 2세는 1509년에 그를 나폴리 부왕으로 임명했다. 그는 1507년에서 1509년까지 시칠리아 부왕직도 맡았었고 나폴리로 돌아와 1522년에 그곳에서 사망할때까지 머물렀다. 1510년에 그는 나폴리에 종교 재판을 도입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 결정은 민중들의 봉기를 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스페인의 왕은 이 칙령을 취소하였다.

 
라파엘로가 그린 라몬 데 카르도나의 부인 도나 이사벨 데 레케센스의 초상화.

1511년에 카르도나는 나폴리 정부를 그의 부인이자 제2대 팔라모스 여백작, 제2대 아벨리노 여백작, 제2대 트리벤토 여백작, 칼로녜 여남작등 이 작위들의 초대 소유자였던 갈세란 데 레케센스 (Galceran de Requesens)의 딸 이사벨 데 레케센스에게 맡기고 캉브레 동맹 총지휘관직을 맡아 북이탈리아로 떠났다.

그 다음해에 그는 라벤나 전투에서 느무르 공작 가스통 드 푸아에게 패배를 당했다. 그는 지원을 받기 위해 당시 스페인을 지지했던 메디치 가문이 통치하는 토스카나 지역으로 움직였다. 그의 병력들은 프라토를 포위하여 함락시킨후 학살을 벌였다.

1513년에 카르도나는 새로운 병력을 이끌고 롬바르디아로 돌아와, 바르톨로메오 달비아노가 이끄는 베네치아군을 격파시키며 라 모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는 마리냐노 전투에서 베네치아군이 프랑스 병력에 합류하는걸 막지 못 했다.

1513년 2월에 본명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교황 율리오 2세 (1443–1513)가 사망하고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 카르도나는 스페인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1515년에 그는 오늘날 라치오 남부 지역의 영지인 알비토 백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1519년에 새롭게 즉위한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나폴리 왕국의 최고 제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1522년 나폴리에서 사망했다. 조반니 다 놀라가 제작한 벨푸치에 있는 그의 기념비는 그 지역내 르네상스 예술의 가장 뛰어난 예시 중 하나이다.

자녀편집

그는 자녀 두 명을 두었다 :

각주편집

  1. Ballesteros Gaibrois, Manuel (1953). 《Ramon de Cardona, colaborador del Rey Catolico en Italia》. Madrid. 

참고 자료편집

이전
후안 데 라누사 이 가라비토
시칠리아 부왕
1507년-1509년
이후
우고 데 몽카다
이전
후안 데 아라곤
나폴리 부왕
1509년-1522년
이후
샤를 드 라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