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히브리어: רש"י, 라틴어: Salomon Isaacides 살로몬 이사아키데스[*], 프랑스어: Salomon de Troyes 살로몽 드 트루아[*], 1040년 2월 22일 ~ 1105년 7월 13일)는 중세 프랑스랍비 학자이다. 본명은 슐로모 이츠하키(히브리어: רבי שלמה יצחקי, Shlomo Yitzchaki)이며, '라시'라는 이름은 '랍비 슐로모 이츠하키'(히브리어: רבי שלמה יצחקי)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탈무드의 주석 및 타나크에 대한 종합적인 주석을 남겼다.

라시
רש"י
출생1040년 2월 22일(1040-02-22)
프랑스의 기 프랑스 트루아
사망1105년 7월 13일(1105-07-13)(65세)
프랑스의 기 프랑스 트루아
성별남성
직업양조업자(가업), 랍비, 성경 주석, 문법학자

라시는 성경 본문의 기본 의미를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제시하는 능력으로 정평을 얻었다. 그의 30권에 달하는 탈무드 주석은 바빌로니아 탈무드 전체를 망라하며, 1520년대에 다니엘 봄베르그에 의한 첫 탈무드 출판에 추가된 이래로 모든 탈무드 출판물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타나크에 대해서도 모든 수준의 학습자에게 필수적으로 참조되는 수준의 주석을 남겼다. 그 주석 만으로도 300여권 이상의 주석서에서 기본 바탕으로 취급되며, 라시의 언어 선택 및 주석의 분석 결과는 랍비 문학 분야의 주요 인물들에 의해 언급되었다.[1]

생애 편집

1040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샹파뉴 지방의 트루아에서 태어나[2] 5세 때에 아버지로부터 토라를 배웠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고, 독일보름스, 마인츠예시바에서 수학했다.

17세가 되던 때에 결혼하여 딸 셋을 두었다. 25세에 트루아로 귀환하면서, 랍비 법정 베트딘의 일원이 되었다. 할라카 주석을 작성했다. 1070년에 제자들을 모아 예시바를 열어, 이후 트루아는 유대교 연구의 중요한 거점 및 중심지가 되었다. 1096년에는 제1차 십자군 습격에 충격을 받았고 1105년에 그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했다.[3]

라시는 히브리어 성서 및 탈무드의 주해를 다수 남겼으며 이후 수많은 토사피스트를 양성하는 등 성경 주해에 큰 영향력을 남겼다.[4]

라시 문자 편집

 
라시 문자 형식을 띤 히브리 문자의 22글자

라시의 탈무드 및 타나크 주석을 출판하는데 사용된 반필기체 형태의 글꼴을 라시 문자라 부른다. 라시 본인이 실제로 이런 글꼴의 필기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글꼴은 15세기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반필기체 형식의 글자 모양을 그 바탕으로 두고 있다.

손치노 일가(Soncino family) 등 초기 히브리 인쇄공들과 기독교인 성서학자인 다니엘 봄베르그미크라옷 그돌롯탈무드에 대한 라시의 주석들을 조판하는데 이 글꼴을 채용하였는데, 이는 네모꼴의 글자체로 인쇄되던 성경 본문과 랍비 주석을 구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