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가오촨

란가오촨(藍高川(남고천), 1872년 6월 6일(1872-06-06) ~ 1940년 2월 29일(1940-02-29))은 국민정부 대륙 본토 중화민국(國民政府 大陸 本土 中華民國) 시대 초기의 친타이완(親臺灣) 성향을 띈 외교관 겸 정치인 출신 기업가이다. 자(字)는 구이루(貴如, 귀여).

란가오촨
藍高川
Na Ko-chhoan.jpg
중화민국 총통부 외무행정보좌관 직무대리
임기 1913년 8월 23일 ~ 1913년 10월 1일
대통령 위안스카이
신상정보
출생일 1872년 6월 6일(1872-06-06)
출생지 청나라 타이완 성 핑둥
사망일 1940년 2월 29일(1940-02-29) (67세)
사망지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병사
거주지 중화민국 장쑤 성 난징
중화민국 타이완 성 타이베이
경력 중국국민당 외교행정위원
정당 무소속
자녀 3남 1녀(서녀 란민(藍敏))
친인척 이복 서얼 조카딸 란니(藍妮)
현조부 남정원(藍鼎元)
외종조카손녀 손수분(孫穗芬)
종교 개신교

주요 이력편집

그는 청나라 타이완 성 핑둥먀오족 후예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일찍이 아직 갓난이 시절 일가족과 함께 타이완 섬 지방을 떠나 청나라 광둥 성 광저우로 이주하여 청나라 광둥 성 광저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청나라 윈난 성 싼수이에서 성장하였고 청년 시절 반청반제 흥중회 운동에 참가하여 결국 1911년 신해혁명에도 참가하였으며 위안스카이(袁世凱) 중화민국 제2대 대총통 시대 시절 중화민국 총통부 예하 외교비서관 직대 대리 등을 잠시 지내기도 한 그는 훗날 중화민국 군인 겸 정치가 룽지광(龍濟光) 예비역 중화민국 육군 중장을 주군(主君)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근대형 타이완 타이베이 기업가 1세대 중 일원이기도 하며 대륙 본토 아닌 타이완 섬 출신이던 그의 국민정부 중화민국 대륙 본토 초기 시절 친타이완(親臺灣) 성향 외교 철학 관련 이념은 훗날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총통 시절 국부천대 망명 사태의 일부 밑그림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복 서얼 질녀 란니(藍妮)는 지난날 한때 쑨원(孫文)의 아들 쑨커(孫科)와 1936년에 결혼하였으며 쑨커와의 사이에서 소생 1녀를 얻었지만 1948년 쑨커와 이혼하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