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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柳車達, 880년 음력 8월 28일 ~ ?)은 문화 류씨의 시조로 고려조의 건국 공신이다. 그는 황해도 문화 지방의 토호로 왕건고려를 창건할 때 협력하였다. 그의 묘는 황해남도 삼천군 달천종달로동자구 먹대골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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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고려 태조후백제를 정벌할 때 수레를 제공하여 군량미 조달에 적극 협조하여 삼한공신이 되었다. 대승이라는 관직을 제수받았는데, 당시 고려 삼한익찬벽상 공신 중 2등 공신이 12명인데, 그 중 한 사람이다. 유차달의 7세인 류공권(柳公權)에 이르러 가문이 크게 현달하였다.

본래 유(柳)씨는 중국에서 주나라 왕족과 서초 의황제 후손의 두 갈래가 있으나, 현재 한국의 문화유(柳)씨 중 일부는 오히려 유차달은 본래 한국계라고 소개하고 있다.[1]

한편, 유차달은 동학사동계사에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일본에 건너가 죽은 신라 충신 박제상을 초혼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전승도 전해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태조 때 식량수송에 공을 세워 대승(大丞)에 제수되고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받았다고 한다.[2]

가계편집

  • 아들(2세) : 효금(좌윤)
  • 손자(3세) : 금환(중윤)

참조편집

각주편집

  1. 박용운, 유주유씨의 사례를 통해 본 고려사회의 일단면, 한국사학보 제24호 47쪽(2006년 8월)
  2. 新增東國輿地勝覽, 坡平尹氏族譜, 文化柳氏族譜. 〈文秀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