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덕(萬世德, 1547년 ~ 1602년)은 명나라의 무인이다. 자는 백수(伯修), 호는 구택(邱澤) 혹은 진택(震澤).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의 경리(經理)로 조선에 파병되어 조선군을 열성적으로 도와주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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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산서성(山西省) 편두관(偏頭關) 출신이다. 1568년(융경 2년) 진사(進士)가 되고, 남양지현(南陽知縣), 서녕병비첨사(西寧兵備僉事)에 올랐다.

1597년(만력 25년) 9월 정유재란 당시 만세덕은 산동우포정사(山東右布政使)에서 도찰원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 천진등래여순등처순무(天津登萊旅順等處巡撫) 전관해방군무(專管海防軍務)로 승진하였고[1], 이후 파직된 경리(經理) 양호(楊鎬)의 후임으로 조선에 파견되어[2] 조선에 끝까지 머무르면서 왜군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다.

1601년(만력 29년) 5월, 계료총독(薊遼總督)에 임명되었다.[3]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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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겨울 병사하였으며[4] 이후 조선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지어 훈공을 기렸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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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주의(海防奏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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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大明神宗顯皇帝實錄》 卷314 萬曆25년 9월 10일
  2. 《조선선조실록(朝鮮宣祖實錄)》 102권, 31년(1598 무술 / 명 만력(萬曆) 26년) 7월 9일(임진) 1번째기사
  3. 《大明神宗顯皇帝實錄》 卷359 萬曆29년 5월 20일
  4. 《조선선조실록(朝鮮宣祖實錄)》 160권, 36년(1603 계묘 / 명 만력(萬曆) 31년) 3월 25일(신사)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