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 사상
말법 사상(末法思想)은 불교의 역사관 중의 하나로, 정법시(正法時) · 상법시(像法時) · 말법시(末法時)의 3시(三時) 중 마지막 1만년간의 말법 시대에 대한 사상이다.[1]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에 불교에서는 그 가르침이 3단계로 변화한다는 견해가 생겼다.[1][2] 이 견해는 사람들의 기근능력(機根能力)은 차차 저하하고 그 교설이 올바르게 행해지지 않게 된다는 역사관으로 이 견해에 따르면 시대는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의 3시(三時)로 나뉜다.[1]
말법 시대(末法時代)는 정법이 절멸(絶滅)한 시대이며, 이 시기에 윤회하는 불교도에게 강한 반성과 분기(奮起)를 촉구하고, 이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게 하였다.[3]
대표적인 견해
편집말법(末法)으로 들어가는 시기는 정법(正法) · 상법(像法)을 각기 500년 또는 1000년으로 할 것인가, 또는 전자를 500년, 후자를 1000년으로 할 것인가 하는 4종의 이설(異說)이 있으나, 요컨대 상법(像法)이 끝난 이후 1만년간이 말법 시대(末法時代)라는 것은 일치된 의견이다.[3]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의 3시(三時)에 대한 견해 중 그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1]
정법(正法)의 시대는 교설(敎)과 그 실천(行)과 그 증과(證果: 證)의 셋이 모두 갖춰진 시대로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이 정당하게 계승되어 사람들이 구제되는 시기로, 그 기간은 5백년이다.[1][2] 상법(像法)의 시대는 교설(敎)과 실천(行)뿐으로 증과(證)가 없는 시대로 정법(正法)과 유사한 "상법(像法)"의 시대이며 그 기간은 1천년이다.[1][2] 말법의 시대는 교설(敎)뿐인 시대로 고타마 붓다 당시의 가르침인 도(道)를 수행하여 깨닫는 자는 없게 되고 교법만이 잔존할 뿐인 시대이며 그 기간은 1만년이다.[1][2] 말법(末法) 시대 후에는 교(敎)도 없는 법멸(法滅)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1]
중국 불교의 말법 사상
편집말법 사상이 중국 불교의 문헌에 나타난 것은 남악혜사의 《남악사선사입서원문(南岳思禪師立誓願文)》이라 한다.[3] 이어 수나라(隋: 581~618)의 신행선사(信行禪師: 540~594)는 말법은 제3계(第三階)의 시(時)로 보고, 특정한 일법(一法)에 의하지 않고, 보법(普法: 全佛敎)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여 삼계교(三階敎)를 창도(唱道)하였다.[3] 당나라(唐: 618~907) 시대에는 도작(道綽: 562~645) · 선도(善導: 613~681) 등이 말법상응(末法相應)의 가르침으로써 정토교(淨土敎)를 퍼뜨려, 말법 사상이 서민 사이에 크게 침투되었다.[3]
정법 · 상법 · 말법의 각 시기의 연수(年數)에는 이설(異說)이 있다.[2] 그러나 당나라 시대 당시에서는 고타마 붓다의 입멸(入滅)을 기원전 949년이라 하여 말법의 제1년은 남조(南朝) 양(梁: 502~557)의 승성 원년(承聖元年: 552)에 해당된다고 하였다.[2] 그것은 당시 침체된 불교계 사정은 물론 파불사건(破佛事件) 등과 맞물려 말법의 도래가 가까워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예전처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가르침과 수행(修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말법에 어울리는 교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 마침내 그것이 정토교(淨土敎)가 왕성해지는 원인이 되었다.[2]
이 타력(他力)을 강조하는 사상은 자력(自力)을 내세우는 선종(禪宗)과는 대조적인 것이다.[2] 선종(禪宗)은 양대(梁代) 때 보리달마(菩提達摩)에 의하여 처음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당나라 시대의 신수(神秀: 605?~706)와 혜능(慧能)(638~718, 6조대사)에 이르러 확립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