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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 (시인)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음력 10월 17일) ~ 2014년 12월 6일[1])은 대한민국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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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
작가 정보
출생 1953년 11월 23일(1953-11-23)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일군 흥해읍 오도2리
사망 2014년 12월 06일(2014-12-06) (61세)
직업 시인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장르
주요 작품
영향

생애편집

경상북도 영일군 흥해읍 오도2리에서 태어났다. 흥해초등학교, 포항 동지중학교, 동지고등학교 (당시 동지상업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대학교 4학년 때,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 〈연날리기〉 외 3편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동시에, 한광여자상업학교(현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2부"(야간부) 국어 교사, 국립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강사 등을 거쳐, 전업 시인으로 활동했다.

평가편집

해체시편집

1979년 등단한 박남철은 이성복, 황지우와 더불어 해체시의 선두 주자로 불렸다.[2]

1980년대 중반부터는 모든 금기를 해체하는 '해체시'로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수사나 시의 구조보다는 형태 파괴, 풍자, 분노 등을 여과 없이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독자놈 길들이기〉라는 시는 시인과 독자의 관계까지 파괴하는 파격을 보여주었으며,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박남철을 "문법 해체를 통해 억압에 저항하려는 문학적 시도"라고 평가[3] 하였다.

이후 여섯 번째 시집인 《바다 속의 흰머리뫼》를 출간하였고, 이 시집은 2005년경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것은 박남철이 등단 27년 만에 처음으로 받은 상으로 알려져 있다.[3] 2008년에는 불교문예작품상을 받았다.

비판편집

2000년대 들어 특정 여성 문인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언어 폭력으로 해석되는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사건으로 기소되었다.[4][5] 또한 여성 신인 작가를 상대로 성추행 및 폭행을 한 의혹이 있으며 해당 작가에게 고소를 당했다.[4][5][6]

시집편집

  •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박덕규와의 공동시집", (청하, 1982년 - ISBN 2006506000337)
  •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년 - ISBN 893200210X)
  • 《반시대적 고찰》 (한겨레, 1988년 / 세계사, 1999년 - ISBN 8933810927)
  • 《용의 모습으로 / 박남철 비평시집 I》 (청하, 1990년 - ISBN 2006506002911)
  • 《러시아집 패설》 (청하, 1991년 - ISBN 2006506001099)
  • 《생명의 노래》[시선집] (문학세계사, 1992년 - ISBN 8970750150)
  • 《자본에 살어리랏다》 (창작과비평사, 1997년 - ISBN 8936421654)
  • 《바다 속의 흰머리뫼》 (문학과지성사, 2005년 - ISBN 8932016267)

각주편집

  1. 연합뉴스 (2014년 12월 7일). “‘자본에 살어리랏다’ 박남철 시인 별세”. 《한겨레신문》. 2015년 12월 9일에 확인함. 
  2. 유성문 객원기자 (2008년 3월 4일). “[포항출향인사]포항 출신 어떤 인물들이 있나”. 《뉴스메이커 764호》 (경향신문). 
  3. 손민호 기자 (2005년 10월 26일). “박남철 시인 '쉰두 번째 생일이구나 … ㅜ ㅜ … ' 등단 27년 만에 첫 상 변함없는 파격의 문법”. 중앙일보. 26면. 
  4. 김소희 기자 (2001년 4월 17일). “[사람과사회] 시여, 성희롱의 무기여”. 한겨레21. 
  5. 이승훈 객원논설위원 (2002년 2월 15일). “[Issue Maker]얻은 자와 잃은 자-진중권씨의 모욕죄 송사를 보고서”. 브레이크뉴스. 
  6. 윤정훈 기자 (2000년 5월 29일). “[문단도 性희롱파문]박남철시인, 신인작가 폭행”. 동아일보.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