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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독립 운동 참여편집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忠淸南道 公州郡 儀堂面)에서 전개된 음력 3.1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그는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에서는 8곳에서 약 400여 명의 면민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4월 2일에도 약 600여 명의 면민들이 10여 곳에서 각기 대한 독립 만세를 연호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힌 그는 1919년 4월 26일 충청남도 공주경찰서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조선 광복 이후편집

이후 충청남도 공주 향리 초야에서 유교 성리학 터주로 지내다가 1945년 8월 15일, 조선 광복을 목도하였고 1년 후 1946년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1970년 1월 20일 탈당할 때까지 한국독립당에서 행정자치특보위원, 대표행정위원, 대표상임행정위원, 최고위원을 지냈다.

정당 당원 이력편집

서훈편집

그의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자 2011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추서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