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국치
백년국치는 중국 역사에서 제1차 아편 전쟁(1839–1842)으로 시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중화민국이 4대 연합국 중 하나로 떠오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된 시점으로 끝난다고 여겨지거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시점으로 끝난다고 보는, 중국에서 쓰이는 역사 용어다. 이 시기는 청나라와 이후 중화민국이 겪은 쇠퇴, 패배, 정치적 분열, 그리고 서구 열강, 러시아, 일본 제국의 간섭과 침략으로 인한 굴욕적인 경험들이 특징이다.
‘굴욕’이라는 표현은 청일 전쟁에서의 패배와 그 후의 일련의 사건들, 특히 1890년대 후반의 조차지 쟁탈전으로 인해 중국 국민주의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이후로 국치(국가의 치욕)라는 개념은 많은 중국 작가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들 간에는 이 개념에 대한 이해에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일반 학자들과 헌법주의자들은 후기 청나라 혁명가들과는 자신들의 조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국치라는 개념은 후기 청나라 교과서에서도 언급되었다.
중화민국이 설립된 후에는 1915년 일본 정부가 제시한 21개조 요구나,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중국이 부당하게 대우받은 데 대한 항의와 함께 국치라는 개념이 더욱 확산되었다.[1]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모두 불평등 조약과 외국 식민지로 상실된 중국 영토를 비판하며 이 표현을 대중화시켰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 당시에도 이 용어는 흔히 사용되었다. 비록 불평등 조약이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이 시기는 여전히 중국 민족주의 개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치적 수사나 대중문화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2]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Kilpatrick, Ryan (2011년 10월 20일). “National Humiliation in China”. e-International Relations. 2013년 4월 3일에 확인함.
- ↑ Adcock Kaufman, Alison (2010). “The "Century of Humiliation," Then and Now: Chinese Perceptions of the International Order”. 《Pacific Focus》 25 (1): 1–33. doi:10.1111/j.1976-5118.2010.01039.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