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백상규(白象圭, 1880년 10월 4일, 장단도호부[1]~1957년 12월 26일[2])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인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국회의원이었다.

생애편집

동양척식주식회사 위원을 지낸 친일파 금융인이자 기업인인 백완혁(白完爀)의 아들이다. 순종 때 내부비서관과 내부대신 비서관을 지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5년 9월 8일 새벽, 조한용, 여운홍과 함께, 인천으로 상륙한 미 24군단 사령관 존 하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백상규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이 브라운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자기 일행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명문 브라운 대의 장학생이라는 것은 미군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미군 장교 가운데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 있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학교의 건물 모양에서부터 교수 이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질문이 오고갔다. 장교는 "적어도 한때 브라운대 학생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보증을 섰다. 그러나 하지는 면담을 거절하였다.[3][4]

제2대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약력편집

일화편집

  • 해방 이후 초기 적십자사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백상규는 대한적십자사에 20만평의 토지를 기부하였다.
  • 1950년 3월 학제 변경으로 이화여중이 여고와 여중으로 분리되어 신축교사가 필요했던 이화여중에 백상규는 자신과 아들 소유의 서울 종로구 서린동 소재의 100만평대 땅을 희사했다고 한다.[5] 얼마 후 제2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곧 전쟁이 나서 납북된 백상규는 좋은 일을 한 셈이다.
  • 장단군 출신의 대지주로서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1973년 당시 싯가 3억원 짜리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1가 소재 앵두밭을 두고 가족과 관리인 등 간에 17년에 걸쳐 주인이 10 차례 바뀌는 '해방 이후 최장기 소유권 분쟁'이 있었다.[6]

가족관계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전 임
조중현
제2대 국회의원(장단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무소속
후 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