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읍고

백읍고(伯邑考,?~?)는 은나라 말기 때 기원전 12세기 문왕(文王)인 희창(姬昌)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형이다. 성은 희(姬), 이름은 고(考)이며, 백(白)엄지 = 능력있어 가족을 대표하는 인(人)사람 백(伯)은 족읍(族邑)을 대표하는 가족과 조상 제사를 지내는 제(帝)임금을 뜻하는데, 상(商)나라 서쪽 기산(岐山) 서백(西伯)인 주(周)나라 사후(死後) 추서 문왕(文王)이 상(商)나라에 바치는 조공(朝貢)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모은다고, 숭후(崇侯) 호(虎)가 상나라 왕에게 고발하면서, 서백이 상나라로 끌려가 7년 동안 유리(羑里)에 갇혀있을 동안, 서백을 대신해서 백읍(伯邑)을 다스렸기 때문에 백읍고로 불리는 것으로, 읍(邑)고을과 마을 차이는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된 곳을 고을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곳이 촌락이 발전 인구가 집중된 곳이 마을로, 백읍(伯邑)은 성씨 족읍들 중에서 대종(大宗) 성(姓) 적자(嫡子)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거나, 수도 서울에 해당되는 도읍을 말한다.

상(商)나라 제(帝)임금 신(辛) 주왕(紂王)에 의해 능지(凌遲)형을 선고 받았으며, 아버지 희창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동생인 희발(姬發)이 부친의 지위 서백후(西伯侯)를 계승했고, 상(商)나라에 BC1122년 반란을 일으켜 상나라 왕을 죽였는데, 큰 상나라 반격을 피하기 위해 상나라 태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존속시키고 주나라 수도 낙읍(洛邑)으로 돌아갔고, 희발 사후, 아들 주 성왕 등극했고, 섭정을 성왕의 숙부이자 희발 동생 주공 단이 맡았는데, 관숙 선, 채숙 탁이 상나라 왕과 결탁해서 반란을 일으킨 삼감의 난이 발생했고, 3년 동안 전쟁 끝에 삼감의 난을 평정한 주공 단이 상(商)나라를 해체 전국 각지에 상나라 유민을 분할 이주시키는 사민정책 실행하면서, 상나라가 완전 망하고 주(周)나라가 BC1046년 공식 출범, 성왕(成王)이 주(周)나라 1대 왕이 됐다.

나라를 세우면 6대조까지 관작을 높이는 사후 추서하기 때문에, 아버지 사후 추서 2대조 무왕(武王) 희발- 3대조 문왕(文王) 희창 - 4대조 공계(公季) 계력 - 5대조 고공(古公) 단부 - 6대조 태공(太公) = 공조(公祖) 숙류로 사후 추서됐다. 희창은 주(周)나라 실질적 기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희발은 상(商)나라 왕을 죽이고 실질적 주인국 주(周)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에, 왕(王)임금으로 추서했고, 계력 단부 숙류는 주(周)나라가 건국되는데 준 영향은 낮기 때문에, 왕(王)임금 밑 관작인 공후백자남 최고 관작인 공(公)을 추서한 것으로, 공은 팔(八)여덟, 사(私)사사로울, 합쳐진 글자고, 사는 화(禾)벼, 사(厶)나는 팔꿈치를 구부려 물건을 자기쪽으로 감싸는 것으로, 나, 사사롭다는 뜻인데, 벼와 함께 쓰인 것은 임금을 대신해서 벼를 분배하는 임금에 버금가는 오른팔이란 뜻이고, 고대 중국에서 나타나는 숫자가 9, 구이(九夷) 구주(九州), 나머지 8을 다스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뜻이다. 후(侯)는 과녁에 화살을 쏘듯이 중앙에서 분봉지에 파견한 관리란 뜻이고, 백(伯)은 크고 작은 족읍(族邑)을 대표하고, 가족 국가 제사를 지내는 제(帝)임금이란 뜻이다. 자(子)는 그 자손들 인(人)사람이란 뜻이고, 전(田)밭을 갈 력(力)힘있는 남(男)사나이 관작(官爵)은 민(民)노예가 노동하고, 인(人)사람이 소비하는 고대 인민(人民) 주종(主從)관계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일할 말단 관리를 뜻한다.

정사편집

사기 관체세가편집

武王同母兄弟十人。母曰太姒,文王正妃也。其长子曰伯邑考,次曰武王发,次曰管叔鲜,次曰周公旦,次曰蔡叔度,次曰曹叔振铎,次曰成叔武,次曰霍叔处,次曰康叔封,次曰厓季载。厓季载最少。同母昆弟十人,唯发、旦贤,左右辅文王,故文王舍伯邑考而以发为太子。及文王崩而发立,是为武王。伯邑考既已前卒矣。
— 《史记·管蔡世家》卷三十五 管蔡世家 第五

가계편집

대중매체편집

봉신연의편집

희창(姬昌)의 아들들 중 장남이자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며, 음악과 예술에 능하고 준수한 외모를 보유했으며 효성이 깊었다. 아버지 희창이 주왕(紂王)을 알현하러 갈 때 서기(西岐,지금의 산시성(陕西省) 치산현(岐山县))의 성주를 맡았으며, 희창이 유리(羑里)에 유폐되자 희창을 구하기 위해 주왕을 알현해 공물을 바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왕의 첩인 달기(妲己)의 눈에 들었고, 달기는 백읍고에게 고금(古琴)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면서 백읍고를 유혹하려 했다. 하지만 백읍고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달기를 능멸해 달기의 분노를 샀다. 결국 달기는 백읍고가 주왕에게 헌상한 원숭이 백면원후(白面猿猴)가 자신을 덮친 것을 핑계 삼아 주왕에게 백읍고가 자신을 해하려 했다는 거짓 증언을 했고, 백읍고는 분노한 주왕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그 시체는 육병(肉餠)으로 만들어져 아버지 희창에게 보내졌다. 역경(易經)에 통달했던 희창은 백읍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백읍고의 시체로 만들어진 육병을 모두 먹었다. 희창이 풀려나 서기에 도착한 이후에 자신이 먹었던 육병을 모두 토해내었으며, 이것들이 흰토끼로 변했다고 한다.

봉신계획이 끝난 이후 강자아는 백읍고를 오두정신(五斗正神) 중 하나인 중천북극자미대제(中天北極紫薇大帝)에 임명했다.[1]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봉신연의》 장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