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芙江 保晩亭 및 黔潭書院 廟庭碑)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강학공간으로 이용했던 정자인 보만정과 후학들이 그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검담서원의 묘정비이다. 2002년 1월 11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1]되었으나,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2]

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芙江 保晩亭 및 黔潭書院 廟庭碑)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10호
(2012년 12월 31일 지정)
면적2,746.5m2
수량정자 1동, 비 1기
시대조선시대
위치
부강 검담서원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부강 검담서원
부강 검담서원
부강 검담서원(대한민국)
주소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금호리 712-3
좌표북위 36° 30′ 6″ 동경 127° 21′ 21″ / 북위 36.50167° 동경 127.35583°  / 36.50167; 127.35583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보만정및검담서원묘정비
(保晩亭및黔潭書院廟庭碑)
대한민국 충청북도문화재자료(해지)
종목문화재자료 제31호
(2002년 1월 11일 지정)
(2012년 7월 1일 해지)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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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후학들이 그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검담서원의 묘정비와 강학공간으로 이용했던 정자인 보만정이다. 송준길은 조선 효종∼현종 때의 문신으로 예학에 매우 밝았다.

보만정은 원래 현종 10년(1669) 동춘당 송준길이 학문을 연구하며 여생을 마치려고 이곳 검담에 세운 정자이다. 숙종 20년(1694)에 송준길을 기리기 위해 검담서원을 세웠는데, 이 때부터 보만정은 검담서원의 강학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고종 8년(1871) 서원이 훼철될 때 함께 없어졌다가 1920년대 초 다시 세워졌다. 보만정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내부에는 방이 있고,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있으며 방의 뒷면에 서고가 있다. 이 서고에는 동춘당 문집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었다.

보만정 앞뜰 가운데에 서 있는 검담서원 묘정비는 받침부분과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영조 42년(1766)에 세워진 것으로 김원행(金元行)이 글을 짓고, 손자의 손자인 송명흠(宋明欽)이 썼다.

보만정은 조선 후기 강학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건축적으로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묘정비는 검담서원의 내력 및 동춘당 송준길의 일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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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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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충청북도고시 제2002-2호, 《충청북도문화재자료지정》, 충청북도지사, 충청북도보 제2179호, 17면, 2002-01-11
  2. 세종특별자치시 고시 제2012 - 63호,《세종특별자치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2012-12-31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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