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협
행적
편집적오 11년(249년),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잇고 보즐의 영지를 거느렸으며, 무군장군이 더해졌다.[1]
적오 12년(250년), 위나라의 정남장군 왕창의 별동대로 형주자사 · 양렬장군 왕기의 공격을 받아 이릉 성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했다. 왕기는 보협을 공격하는 형세를 보이면서 신성태수 주태와 함께 군사를 나누어 오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치고 곡식과 사람을 많이 빼앗았다.[2]
영안 7년(264년) 2월, 진군장군 육항(陸抗), 정서장군 유평(留平), 건평태수 성만(盛曼)과 함께 촉으로 침입하여 옛 촉한의 파동태수 나헌(羅憲)이 지키는 영안성을 포위했다. 촉서 곽준전에 배송지가 인용한 《양양기》에 따르면, 동오는 등애(鄧艾)와 종회(鐘會)가 모두 죽고 촉에 주인이 없어 어수선한 틈을 타 촉을 취하려고 했으나, 나헌이 동오를 거부하여 들어가지 못하자 보협이 대군을 이끌고 영안성을 쳤다가 출격한 나헌과 싸워 크게 졌다.[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