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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국사 석조여래좌상

서울 봉국사 석조여래좌상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봉국사에 있는 불상이다. 2013년 12월 26일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 제57호로 지정되었다.[1]

봉국사 석조여래좌상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종목 문화재자료 제57호
(2013년 12월 26일 지정)
수량 1점
소유 봉국사
참고 상높이 : 123.5cm
어깨폭 : 60cm
무릎폭 : 83.7cm
위치
서울 봉국사 (대한민국)
서울 봉국사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637
좌표 북위 37° 35′ 4″ 동경 127° 0′ 57″ / 북위 37.58444° 동경 127.01583°  / 37.58444; 127.01583좌표: 북위 37° 35′ 4″ 동경 127° 0′ 57″ / 북위 37.58444° 동경 127.01583°  / 37.58444; 127.01583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목차

문화재 지정사유편집

되는 둥근 보주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으로 신앙되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조선후기에서 말기에 서울·경기지역에서 유행했던 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조사 보고서편집

봉국사 만월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석불좌상은 두손을 포개어 놓고 약합으로 생각되는 둥근 보주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으로 신앙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두부가 큰 편으로 머리 중앙에는 커다란 반달형태의 중계주가 새겨져 있고 두부 정상에는 정상계주가 낮게 새겨져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이 둥근 머리에는 큼직한 나발은 가로 세로의 폭이 일정한 공간에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양 뺨에 살이 많고 둥근 얼굴에는 가느다랗게 뜬 눈과 우뚝한 코, 미소 띤 작은 입이 표현되어 있다. 두부와 신체는 거의 이어져 있어 목이 없으므로 삼도의 표현은 없다.

좁고 쳐진 어깨에 이중착의 형식으로 표현된 가사에는 단조롭지만 단정한 3조의 층단 주름이 양 깃과 어깨에 걸쳐진 대의 자락, 옷소매와 발목을 덮은 군의에 일정하게 새겨져 있다. 결가부좌한 다리의 발밑으로 옷자락이 V자형으로 늘어져 있고 오른쪽 무릎의 아랫부분은 훼손되어 보수된 상태이다.

두 손을 포개어 선정인을 결하고 그 위에 보주(약합)을 올려서 들고있는 도상의 불좌상은 조선후기에 서울·경기의 중부지역에서 유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명문을 통해서 1763년의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안양 삼막사 마애삼존불상》(치성광여래상)을 비롯해서, 《시흥 호압사 석약사불좌상》(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8호),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석조약사여래좌상》, 《시흥 진덕사 약사여래좌상》(1900년경)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 상들과 봉국사 약사여래상을 비교해보면, 삼막사, 호압사, 흥국사 상보다는 제작시기가 늦을 것으로 생각되면 진덕사보다는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조선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봉국사 석조불좌상이 문헌에 보이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奉恩本末寺誌』에 “만월전에 봉안된 石質紛相의 약사여래로 높이는 3.30寸, 너비는 2.30寸초다”라고 적힌 기록이다. 이것을 보면, 이 상은 처음부터 돌로 조각하여 호분을 입혔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940년에 작성된『朝鮮寺刹貴重財産目錄』에도 봉국사에 약사여래상이 한 구 봉안되어 있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봉국사 석조불좌상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봉국사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조선후기에서 말기에 서울·경기지역에서 유행했던 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서울특별시고시 제2013-460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지정 고시》, 서울특별시장, 서울시보 제3210호, 218면, 2013-12-26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