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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申生)은 진 헌공의 맏아들이며, 진 혜공진 문공의 맏형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살하려고 하자 그는 자결한다.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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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기의 역사서 《춘추좌씨전》의 '장공 28년'과 《사기 (역사서)》권39(卷三十九) 진세가 제9(晉世家 第九)에 따르면, 신생은 진나라 헌공(獻公)의 첫째 아들이다. 헌공은 아버지 무공의 첩인 제강(齊姜)과의 사이에서 장차 진나라 목공(穆公)의 부인이 될 딸과 태자 신생을 낳았다.[1]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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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은 아버지 헌공의 새 부인인 여희(驪姬)의 모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상세한 내용이 《춘추좌씨전》 '희공 4년'에 나온다. 여희는 헌공이 여융(驪戎)을 정벌했을 때 여융의 왕이 바친 여자이다. [2]

여희의 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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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희는 해제(奚齊)를 태자로 책립하려 궁중의 일을 맡고 있는 대부와 궁리하였다. 여희가 태자에게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꿈에서 그대의 생모인 제강을 보시었다. 그러니, 그대는 속히 제강에게 제사를 지내게."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곡옥(曲沃)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헌공에게 바쳤다. 그때 헌공은 사냥을 나갔으나 여희는 그 제물을 궁 안에 6일 동안 두었다. 헌공은 먹기 전에 술을 땅에 부어 고수레를 하니, 땅이 부풀어 오르고, 그것을 개에게 먹이니 개가 죽어 넘어지며, 잡일을 하는 자에게 먹이니, 그 역시 죽고 말았다. 여희는 울며 말하기를, "군주를 해치려는 도적이 태자에게 붙어 있사옵니다."라고 했다. 이에 태자는 신성(新城)으로 도망해 피했고, 헌공은 태자의 스승인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3]

누명을 쓰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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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느 사람이 태자에게,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하면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신생은 나이가 든 아버지에게는 여희가 유일한 낙이라 그녀를 헐뜯고 싶지 않으며, 헌공이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를 분별할 처지가 못 되어 누명을 벗을 길이 없고, 외국으로 망명하여도 반역죄인을 받아주지 않으리라고 대답한다. 결국 그는 12월 무신일에 신성에서 목을 매어 죽게 된다. [4]

국어(國語)》에서의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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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기의 역사서 국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신생이 직상(稷桑)에 이르자 적인(狄人)이 나와 저항했다. 신생이 나가 싸우려 하자, 호돌(狐突, 진 문공의 외조부인 백행(伯行))이 신변 위험과 참언(신생을 태자에서 밀어내려는 참언)을 이유로 말렸다. 그러나 신생은 직상에서 적인을 물리치고 돌아왔다. 이후에 참언이 더욱 일어났고, 호돌은 문을 닫고 문 밖 출입을 삼갔다. 군자가 이에 대하여 말하였다. ‘호돌은 사려가 깊도다.’-- 《국어》 제7권 중[5]

이 부분이 고사성어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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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대백과사전 '문공'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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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晉獻公娶于賈,無子。烝于齊姜,生秦穆夫人及大子申生。 중국어 위키문헌 《春秋左氏傳》莊公
  2. 《(신완역)춘추좌씨전》, 문선규 역, 서울: 명문당, 2009, 344쪽 ISBN 9788972708834
  3. 《(신완역)춘추좌씨전》, 문선규 역, 서울: 명문당, 2009, 344쪽 ISBN 9788972708834
  4. 《(신완역)춘추좌씨전》, 문선규 역, 서울: 명문당, 2009, 345쪽 ISBN 9788972708834
  5. 《국어》, 임동석 역, 서울 : 동서문화사, 2009, 546쪽 ISBN 9788949705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