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Fadeddenim/연습장

호주의 술 문화 호주에서 술은 일반적으로 펍이나 주류 판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모두 개인 소유의 가게입니다. 증류주는 주류 판매점과 펍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식료품점의 경우 매장 내 위치한 별도의 주류 판매점 외에는 증류주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WHO 연구에 따르면 호주의 알코올 소비량은 북미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 국가보다 더 높습니다. 알코올 섭취는 호주의 예방 가능한 사망 및 병원 입원의 원인 중 담배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요인입니다. 술은 여러가지 사회적 상황 혹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서 소비되며, 음주를 권유 받는 상황도 곧잘 발생합니다. 호주 문화에서 음주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여겨지지만, 과도한 음주는 개인 뿐만 아니라 호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2012년 기준, 호주인들은 연간 141억 달러를 술값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호주에서 과음은 일종의 문화적 규범이었습니다. 한동안 호주의 죄수들은 일정량의 럼주를 분배 받았습니다. 뉴사우스웨일스 군단 내부에서 럼주가 유통되면서 역사상 유일하게 정부 장악에 성공한 무장 쿠테타로 이어졌으며, 훗날 이를 1808년 럼 반란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1830년대 호주에서 가장 널리 소비된 주류는 증류주였으며, 초기의 보수적인 추정치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는 매년 한 사람당 3.6리터의 순수 알코올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830년대에는 절제 운동이 식민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영향력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 시기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1910년부터 1928년까지 호주 수도권 지역에서는 주류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서호주에서는 1911년, 1921년, 1925년, 1950년에 각각 한 차례씩 금주법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1837년에는 원주민의 폭음이 문제가 되자 원주민의 음주를 막기 위한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1852년에 빅토리아 골드필드에서 음주를 금주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밀주 가게 증가의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음주의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호주 주에서 주류 판매 업소는 오후 6시까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 조치는 알코올 소비를 줄이기는커녕 폐점 시간 전 한 시간 동안 과도한 음주로 이어져 이 현상은 '6시 폭음'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 동안 호주에서는 맥주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맥주의 인기는 감소한 반면 와인 소비는 증가했습니다. 알코올 소비량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증가하다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3년에 1961년과 비슷한 소비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순수알코올 소비량은 1974년과 1975년 평균 13.09리터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습니다. 1965년 3월, 멀 솔튼과 로잘리 보그너는 여성들이 공공 술집에서 남성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없도록 한 법에 항의하기 위해 브리즈번의 레가타 호텔 난간에 개 목줄로 자신들을 묶어 고정시켰습니다. 1965년 남호주의 와인 제조가 토마스 앙고브는 박스 와인 혹은 와인 통이라고 불리는 것을 발명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1인당 와인 소비량은 증가하고 맥주 소비량은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고급 맥주 또는 부티크 맥주의 판매가 인기를 얻으면서 맥주 시장 가치가 증가했습니다. 2005년 퀸즐랜드 주에서는 알코올 관련 폭력을 줄이기 위해 세 곳의 유흥가에서 새벽 3시 이후에는 허가된 장소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락아웃 제도 시범운영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멜버른 라이브 음악 집회는 주류 면허법이 도시의 라이브 음악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항의하는 공개 집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