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Rx5935/연습장

바리 백작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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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e du Barry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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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기욤 뒤 바리 백작 본명:잔느 앙투아네트 출생 :1743년 8월 19일 사망 :1793년 12월 8일 (50세)

바리 백작 부인 (프랑스어: Madame du Barry, 1743년 8월 19일~1793년 12월 8일)은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정부로, 퐁파두르 후작 부인과 함께 루이 15세의 대표적인 정부로 알려져있다. 본명은 잔느 앙투아네트 베퀴 (프랑스어: Jeanne Antoinette Bécu)였다. 프랑스 혁명 기간에 단두대에서 사망하였다.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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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앙투아네트 베퀴(프랑스어: Jeanne Antoinette Bécu)는 프랑스 보꿀뢰흐([[1]])에서 앤 베퀴(Anne Bécu)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천사 형제'('frère Ange.')로 알려져있는 로마 가톨릭 탁발수도회 수사, 장 밥티스트 고르만드 드 보버니에(Jean Baptiste Gormand de Vaubernier)로 추정된다. 앤 베퀴는 매우 유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재봉사였다. 잔느에게는 유아기에 죽은 의붓동생 클로드(Claude)가 있었다. 클로드의 아버지라 추정되는 빌라드 듀몽소(Monsieur Billard-Dumonceaux)는 잔느가 3살 적 무렵 잔느와 앤에게 아버지와 남편이 되기로 하고 잔느와 앤을 파리에 데리고 간다. 앤은 듀몽소의 여주인인 프란체스카(Francesca/Madame or La Frédérique) 부인의 요리사로 일하게 되며 잔느는 프란체스카 부인에게 사랑받아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얼마 후 드몽소는 잔느를 교육시키기 위해 세인트 오르 수녀원(Saint-Aure)으로 보낸다. 하지만 프란체스카 부인의 질투 때문인지 잔느와 그녀의 엄마는 쫓겨나고 15세에 잔느는 '나이가 됐다'는 명목으로 수녀원을 나온다. 이후 그들은 앤의 남편, 니콜라 랑송(Nicolas Rançon)의 작은 집에서 살게 된다. 잔느는 살림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그녀는 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값싼 장신구들을 팔았다고 한다. 일부 사료에서는 그녀가 창부로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녀가 한 직업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라메즈라는 미용사의 조수로 일하다 나중에는 일찍이 과부가 된 마담 드 라 가드(Madame de la Garde)의 말동무(dame de compagnie)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마담의 중년 아들들과 불륜을 일으켜 쫓겨난다. 후에 잔느는 마담 라비(Madame Labille)가 소유하고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바느질 도구 가게, '아 라 뜨왈렛'('À la Toilette')에서 모자장수의 조수로 일한다. 이 때 잔느의 매우 친한 친구가 된 마담 라비의 딸은, 후에 유명한 화가 아들레이드 라빌 기아드(Adélaïde Labille-Guiard)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그림이 보여주듯이, 잔느는 매우 매력적인 금발의 굵은 곱슬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미모는 장 밥티스트 뒤바리(Jean-Baptiste du Barry)경의 이목을 끌게 된다. '교활한 자'('le roué')라고도 불린 뒤바리 경은 높은 신분을 가진 뚜쟁이였다. 뒤바리 경은 카지노를 가지고 있었는데, 잔느는 마담 퀴즈누아의 사창가 카지노(Madame Quisnoy's brothel-casino)에서 접대하다가 그의 관심을 받게 된다. 그 당시에 잔느는 자기 자신을 잔느 보베니에(Jeanne Vaubernier)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뒤바리 경은 그녀를 집에 정부로 두었다. 뒤바리는 그녀에게 란지 부인(Mademoiselle Lange)이라는 호칭을 주고, 파리 최상류층 계급의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게 한다.

국왕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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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 실의에 빠져있던 루이 15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루이 15세는 그녀의 미모와 지성이 마음에 들어 뒤바리 백작과 이혼하고 정부가 되는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잔느는 이혼 후에도 바리 백작 부인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조건으로 기욤 뒤 바리 백작과 이혼해버렸다. 그녀는 마담 드 퐁파두르처럼 정치에 관여하진 않았지만, 그 이전까지 자신이 우러러보던 높은 귀족들이 자신에게 조아리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사랑했던 루이 15세의 딸들과, 그녀와 친하게 지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놓고 그녀를 무시하였다고 한다. 이에 바리 백작 부인은 루이 15세와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마담 라 도핀느의 행태가 계속될 경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외교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 압박하자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오빠의 설득에 굴복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에게 << 오늘 베르사유에 사람이 참 많군요 (프랑스어: Il y a bien du monde aujourd'hui à Versailles) >> 라고 직접 인사를 건넨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루이 15세의 병세가 악화되자, 루이 15세가 하사했던 루브시엔 성에서 머물게 되었고, 그가 사망하고 그의 손자 루이 16세가 즉위하자 수도원으로 사실상 추방된다. 루이 15세의 사망 이후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루이 16세는 그녀에게 루브시엔 성에서 다시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당시 그녀는 런던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자신의 저택에 가보기 위하여 프랑스에 입국하지만, 공화주의자에게 붙잡혔고, 결국 콩시에르쥬리 감옥으로 압송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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