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Wind2539/연습장

慶州薛氏는 없다. ‘慶州薛氏라 단독으로 쓰면 안되고 36代 子升 이후 淳昌薛氏로 불러야 하나 淳昌慶州薛氏와 같이 慶州 병행 적용 추세’ 등 베푸는 듯한 말장난도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더니 바로 그 꼴이다. 傲慢오만한 淳牌의 허튼 分籍 논리부터 하나하나 파헤쳐보자.

①36代 子升이 高麗 仁宗때 禮部侍郞예부시랑에서 혹은 玄孫의 配享배향 후 누군가의 推尊으로 淳和伯(淳和의伯, 淳昌의伯)이 되었으며 그 후손이 31대 仁孫의 分籍은 없는 듯이 中始祖로 子升을 내세우고 本貫을 淳昌으로하여 分籍(淳牌는 造語 改貫)하였다고 하나 뜻있는 慶州宗親과 貴昌귀창 系列계열 開城派개성파는 동행하지 않고 慶州(‘鷄林계림’ ‘月城월성’)로 本貫을 이어오고 있음에도 淳牌는 있을 수 없는造語 改貫을 내세운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부리며 이를 否定한다.

☞ 어려워진 慶州를 멀리하고 벼슬 좀 한다고 權勢권세와 넉넉함이 있는 淳昌에 그들만이 이롭고자 둥지를 튼 것을 造語 改貫? (再)分籍분적일 뿐이다.

☞ 벼슬 좀 했다고, 進士 했다고 형제간에도 각각 派를 만든 것을 보면 요즘 시각으로 淳昌은 다른 姓氏들의 따라 잡이이거나 偏狹편협되고 가볍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朴正熙, 金大中... 先代를 推尊추존하거나 派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 增補文獻備考, 萬姓大譜, 姓氏總攬, 朝鮮氏族統譜 등의 (中)始祖가 慶州薛氏는 聰, 淳昌은 고려 초기 5대 경종(재위975년~981년) 무렵의 31世 仁孫(妻鄕처향)이라는 기록을 淳牌는 애써 외면해 버리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러면서 子升을 내세우는 것은, 家勢는 기울었지만 高邁고매함이 배어 있는 慶州의 품격을 淳昌의 넉넉함으로 넘어서고자 못난 己巳譜 編纂陣편찬진들이 모여 奸計간계를 부리는데 첫 디딤돌로 삼기 위함이며, 仁孫의 分籍을 얼버무려 造語 改貫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中始祖가 子升이라 하더라도 惑혹하여 동조하는 一族도 있었겠지만 그 후손들의 爲計위계에 의한 것으로 慶州薛氏 모두의 造語 改貫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