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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다다쓰구(일본어: 酒井忠次)는 센고쿠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활약한 미카와무장이다. 도쿠가와가가신으로서 도쿠가와 사천왕의 필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고모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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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다다쓰구
酒井 忠次
Sakai Tadatsugu.jpg
세 잎의 접시꽃
세 잎의 접시꽃
시대 센고쿠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출생 다이에이 7년(1527년)
사망 게이초 원년 음력 10월 28일(1596년 12월 17일)
별명 아명: 고헤이지(小平次)
통칭: 사에몬노조(左衛門尉)
계명 先求院天誉高月縁心居士
묘소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관위 종4위하
주군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 →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씨족 사카이 사에몬노조가(酒井左衛門尉家)
아내 정실: 우스이히메(碓井姫, 마쓰다이라 기요야스의 딸)
자녀 이에쓰구(家次), 혼다 야스토시(本多康俊), 오가사와라 노부유키(小笠原信之) 등

생애편집

유능한 장수로서 가문 중에서 지위가 높아 도쿠가와 이에야스미카와 국에 있던 시절 주요성의 성주나 군진(軍陣)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다케다씨 진영에 야습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둘 정도로 군략에도 뛰어났다. 그 밖에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의 활약, 히데다다를 동반한 상경 등 가문내에서 위세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에야스가 간토로 전봉된 후 영지로 하사받은 것은 고작 5만석이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다다쓰구는 이에야스에게 다른 동료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좀 더 늘려줄것을 요구했으나 이에야스는 “자네도 자기 아들[1]은 귀여운가 보지?”라며 단숨에 물리쳤고 다다쓰구는 이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당시로부터 약 10년 전 쯤 이에야스에게는 노부야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다다쓰구는 오다 노부나가를 방문할 시 노부야스를 자주 폄하를 하였는데 나중에 노부나가가 노부야스에게 시집간 도쿠히메의 편지를 받고 불안해진 상태에 다다쓰구의 언급에 노부야스를 할복시킬 것을 명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다쓰구는 이에야스의 고모와 결혼하여 가문내에서 그 지위가 상당히 높아 이에야스가 하는 일에 자주 간섭을 하고 반대를 하였다. 가신의 권세가 이로 인해 군주를 뛰어넘으려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 법이었다. 사카이 가문의 몰락은 이에야스의 보복심리가 아닌 다다쓰구의 오만한 처세술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후에 손자 다다시게에 의한 사카이 나가토노카미 사건(酒井長門守一件)으로 사에몬노조가는 멸문할 뻔 하였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