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에티엔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

샤를에티엔 세자르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프랑스어: Charles-Étienne César Gudin de La Sablonnière, 프랑스어 발음: ​[ʃaʁl etjɛn sezaʁ ɡydɛ̃ də la sablɔnjɛʁ], 1768년 2월 13일 ~ 1812년 8월 22일)는 프랑스 혁명 전쟁나폴레옹 전쟁참전프랑스군인이다.[1]

샤를에티엔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
프랑스어: Charles-Étienne Gudin de La Sablonnière
1839년에 조르주 루제가 그린 샤를에티엔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 사단장의 초상화
1839년 조르주 루제 그린 샤를에티엔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 사단장 초상화
프랑스 제1제국의 국장 (1804~1815년)
프랑스 제1제국의 국장 (1804~1815년)
본명 샤를에티엔 세자르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프랑스어: Charles-Étienne César Gudin de La Sablonnière)
로마자 표기 프랑스어 발음: ​[ʃaʁl etjɛn sezaʁ ɡydɛ̃ də la sablɔnjɛʁ]
출생일 1768년 2월 13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상트르발드루아르 루아레 몽타르지스
사망일 1812년 8월 22일 (44세)
사망지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중앙 연방관구 스몰렌스크주 스몰렌스크
국적 프랑스 식민제국의 기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의 기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제1공화국의 기 프랑스
프랑스 제1제국의 기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성별 남성
학력 브리엔르샤토 군사학교
경력 브리엔르샤토 군사학교
배우자 잔 카롤린 크리스틴 크뤼제
자녀 샤를 가브리엘 세자르 고댕
종교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충성 대상 프랑스 식민제국의 기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의 기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제1공화국의 기 프랑스
프랑스 제1제국의 기 프랑스
복무 프랑스 육군
복무기간 1782년 ~ 1812년
근무 프랑스 육군
최종계급 사단장
지휘 제3보병사단 (프랑스 제1제국) (1804 - 1812)
주요 참전
기타 이력 개선문에 새겨진 이름들
퐁텐블로궁 총독
서훈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
성헨리 군사 훈장
프랑스 제1제국의 귀족
묘소 프랑스의 기 프랑스 일드프랑스 센주 (프랑스) 파리의 아롱디스망 메트로폴 메트로폴 뒤 그랑 파리 파리 (프랑스) 파리 20구 페르 라셰즈 묘지 페르 라셰즈 예배당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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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생애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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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에티엔 구댕 드 라 사블로니에르1768년 2월 13일 몽타르지스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브리엔르샤토 군사학교에서 공부 1782년 10월 장다름으로서 국왕경비대입대했다.

연대 입대와 생도맹그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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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9월 소위아르투아 공작 연대입대했고, 1791년 1월부터 1793년 1월까지 중위생도맹그 수비대주둔했다.[2] 구댕은 북부군 (프랑스 혁명), 다음 라인군과 모젤군참모장으로 여러 직위에 뽑혔다.

수보로프의 이탈리아와 스위스 원정과 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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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중장이 됐고 수보로프의 이탈리아와 스위스 원정 동안 지휘권을 맡았다. 다음 슈톡카흐 전투와 엥겐 전투, 메스키르히 전투, 회흐슈테트 전투 (1800년), 노이부르크 전투참전했다. 전장에서의 용맹으로 사단장으로 진급한 1800년 7월 11일 퓌센점령했다.[1] 겨울 호엔린덴 전투에서 프랑스결정적으로 승리 클로드 르쿠르브 에서 우익의 2사단 지휘했다.

나폴레옹 전쟁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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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댕의 이름에투알 개선문 (왼쪽 에서 7번째)에 새겨져 있다.

구댕은 대육군의 제3사단 사령관을 맡았고, 1805년1807년 사이제3차 대프랑스 동맹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쟁에서 싸웠다. 의 제3군단의 제3사단은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가장 먼저 전투에 나선 주요 부대였고 전투의 주요 타격을 입었다. 사상자가 40%에 달했는데, 중상을 입은 구댕이었다.[3] 코스트신나트오드롱 마을항복시키는 참여했고 풀투스크 전투 (1806년)아일라우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08년프랑스 제1제국귀족이 된 다음 퐁텐블로궁총독으로 뽑혔다. 그런 다음 제5차 대프랑스 동맹의 여러 전투참여했다. 아벤스베르크 전투, 란츠후트 전투 (1809년), 에크뮐 전투, 바그람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1812년 제2보병사단지휘를 맡았다.[1] 러시아 스몰렌스크 근처에서 러시아 육군과 싸우던 발루티노 전투 대포알에 맞았다.[4][5] 심장제거되어 파리 (프랑스)페르 라셰즈 묘지에 있는 예배당에 묻혔다.[6]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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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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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에로, 팔루렐기야르 & 툴라르 1995.
  2. 드 라카제 1858.
  3. 샹들리에 1993.
  4. 뮬리에 1852.
  5. BBC 2019.
  6. 로이터 2020.
  7. 슈케 1898.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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