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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돈(徐相敦 또는 徐相燉, 1851년 10월 17일-1913년 6월 30일)은 조선대한제국의 민족 운동가이자 기업인, 공무원이다. 대구에서 지물(紙物)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檢稅官)이 되어 정부의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金光濟)와 함께 대구에서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단연회(斷烟會)를 조직하고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로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이다.조선고종때 민족운동가이다.

업적편집

교회발전편집

증조

부 때부터 천주교 가문이었던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원도와 충청도로, 1839년 기해교난 때는 경상북도 문경, 상주 등지로 피난을 다니다 1859년 대구에 정착했다. 1866년 병인교난 때 신앙문제로 문중에서 쫓겨나고 가산도 탕진하면서 독학을 하면서 자물 행상 및 포목상을 시작하면서 1886년경 상당한 재벌로 부상했다. 이후 정부의 특명으로 경상도 시찰관에 임명되었다. 이 때부터 대구교회 로베르 신부를 중심으로 교회발전에 힘썼고, 사찰관에서 퇴임한 뒤 대구교구가 설립되자 이의 발전에 힘쓰면서 성직자 돕기와 수녀 보호에 솔선수범했다.[1]

독립협회편집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그는 독립협회 주요 회원으로 활약했고, 독립협회 제 4기 민중 투쟁기에는 재무부과장 및 부장급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07년 2월 16일 대구 광문사에서 그 명칭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를 마친 뒤, 광문사 부사장으로서 담배를 끊어 당시의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할 것을 제의하였다.[1] 그 내용을 담은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하고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2000만 국민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하지 않고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환을 모을 수 있고, 나머지는 특별모금을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