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순(徐虞淳, 1849년 1월 15일 ~ 1915년 4월 26일)은 충청도 청주 대주리의 동학 거두이다. 일명 서택순이라고 부르며 자는 석여(錫汝), 도호는 영암(泳巖)이다. 동학의 접주, 수교, 교장을 역임하였다.[1]

1880년대에 충청도 청주 산외면 대주리는 동학 마을로 변했는데, 이때 동학을 받아들인 중심인물이 손천민과 서우순이다. 1885년 해월 최시형이 남긴 천주직포설[2]은 서우순(서택순)의 집에서 이루어진 법설이다. 이 법설은 천도교의 주요 교리중 하나인 <사인여천>과 <대인접물>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890년 서우순의 주선으로 해월은 청주 금성동으로 옮겼었다. 1894년 9월 28일 청주성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패배한 후 체포되었다.

각주 편집

  1. “청주목 대주리의 동학 거두 서우순, 손자 병모·방손 정학”. 《동학농민혁명 종합지식정보시스템》. 2021년 11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11월 23일에 확인함. 
  2. “내 일찍이 청주 서택순의 집에 들렀다가 그 며느리의 베짜는 소리를 듣고 서군에게 ‘군의 자부가 일하느냐, 천주가 직포하느냐?’ 한대 서군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 어찌 서군뿐이리오. 일세인이 이러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