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조선)
생애
편집1399년(정종 원년) 의금부부진무(義禁府副鎭撫)로 재직 중, 진사시(進士試)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401년(태종 1) 증광시(增廣試)에도 동진사(同進士) 18위로 급제했다.[2]
1415년(태종 15)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를 올려 동전의 주조를 그만두기를 청했는데, 이 때 서진도 헌납(獻納)으로서 참여했다.
1417년(태종 17)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있을 때 연회자리에서 술과 과일을 즐겼다는 이유로 병조판서(兵曹判書) 이원(李原), 병조참판(兵曹參判) 이춘생(李春生), 평양군(平陽君) 김승주(金承霔), 이조판서(吏曹判書) 박신(朴信), 공조판서(工曹判書) 성발도(成發道), 파평군(坡平君) 윤곤(尹坤), 총제(摠制) 하경복(河敬復) 등과 함께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았으나, 태종(太宗)이 논하지 말라고 하여 벌을 면했다.[3]
세종(世宗)조에 사복시윤(司僕寺尹), 지울진군사(知蔚珍郡事), 지영천군사(知永川郡事)를 차례로 역임했고[4], 이후 관직이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이르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