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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宋公壇)은 1742년(영조 18년) 조선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장군이 순절한 정원루(靖遠樓)가 있던 곳에 설치한 단으로서, 송상현공을 비롯하여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기념하여 만든 제단이다.

송공단
(宋公壇)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부산광역시 기념물
Dongnaebusunjeoldo.jpg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1호
(1972년 6월 26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
제작시기 조선시대
소유자 부산광역시 동래구
연면적 7단 15기/1322m2
비고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송공단이 세워지기 전에는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弄珠山, 현 동래경찰서 자리)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사람들의 전망제단(戰亡祭壇)을 세워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첨사 정발, 양산부사 조영규(趙英圭), 동래교수 노개방(盧蓋邦)을 비롯한 순절의사들을 모셨는데, 1742년(영조 18년) 송공단으로 옮겼다.

송공단은 동·서·남·북의 4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북단에는 송상현, 조영규, 노개방을, 동단에는 유생 문덕겸(文德謙), 비장 송봉수(宋鳳壽), 김희수(金希壽), 겸인 신여로(申汝櫓), 서단에는 노개방(盧蓋邦)의 부인, 송상현의 첩 금섬(金蟾), 정발의 첩 애향(愛香), 남단에는 향리 송백(宋伯), 부민 김상(金祥)과 두촌녀(二村女) 및 무명전망인을 모시고 매년 4월 15일 관에서 제사를 올렸다.

1760년(영조 36년)에는 동래부사 홍명한(洪名漢)이 사림의 공의(公議)에 따라서 부산첨사 정발과 함께 싸우다 전사한 부사맹(司猛) 이정헌(李庭憲)을 모셨으며, 1766년(영조 42년)에는 다대첨사 윤흥신(尹興信), 유생 양조한(梁潮漢)을 기리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후 부산진에서 순절한 분들은 정공단, 그리고 다대포에서 순절하신 분들은 윤공단으로 옮겨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는 매년 순절하신 날인 음력 4월 15일에 동래기영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목차

정원루편집

송공단이 세워진 정원루(靖遠樓)는 원래 동래동헌 객사에 딸린 누각이다. 정원루는 조선 세종 28년에 김시로 동래부사가 만들고, 신숙주일본 등 변방을 조용하게 한다는 뜻으로 정원(靖遠)으로 이름을 지었다.

1442년 조선 통신사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실사학자 신숙주는 일본을 무시하고 깔본 다른 사신과 달리 일본이 앞으로 조선에 큰 우환이 될것으로 보았다. 당시 일본은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무로마치 막부가 쇠퇴하고 일본 66주간의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일본인의 호전적이고 조직적인 전투장면을 보고 그들은 타고난 싸움꾼으로 그 화가 조선에 미칠 것을 알았다.[1]

일본인들은 사나워 의리로 굴복키 어렵다. 군사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 정원루 기문, 신숙주

각주편집

  1. 이양훈 (2006). 《숨겨진 이야기 부산》. 158쪽: 사단법인부산컨벤션뷰로. 

함께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