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경제

송나라의 경제는 송나라의 경제와 산업을 말한다.[1]

농업 편집

1069년에 중국에서 관개 시스템의 확장을 장려하는 관개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다. 1076년까지 약 10,800개의 관개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3,600만 결의 공공 및 사유 농지를 관개했다.[2] 이 정책의 결과로 송은 농업생산량이 3배로 늘어났다. 농업 수확량은 송나라 때 무당 약 2 탄 (약 110 파운드 또는 50kg 단위)의 곡물이었으며 한 초기에는 1 탄이었다.

세금 편집

곡창지대인 강남 지역에서는 카이펑으로 세금 명목으로 500만 석의 미곡을 운송했다. 500년 뒤 문명인 세종대왕 시대의 조선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선조 통치 하의 조선도, 쌀 생산량은 1석에 180kg 기준, 300만 석을 넘기질 못 했다. 양자강 하류에서 거두는 세금은 송나라 국가재정 전체 수입의 40%에 해당했는데, 즉, 송나라의 수입은 1,250만 석에 해당했다.[3] 1석이 50kg인 송나라를 180kg 기준에 맞추면 337만 석인데, 전체 곡물 생산량이 세금의 10배일 경우, 3,300만 석이다. 인구 700만명을 230만 석의 쌀 생산량으로 유지했던 16세기 조선 문명하고 비교했을 때, 인구 7,000만명을 3,000만 석으로 유지했던 송의 1인당 곡물량도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영지의 생산력이 10만 석 이상은 돼야 영향력 있는 영주로서 인정받았던 센고쿠 시대의 일본도 도쿠가와가 통일하기 전까지는 3,000만 석을 크게 넘지 못 했고, 1620년에는 2,700만 석이라는 기록도 있다.[4]

상단, 투자 및 무역 편집

상인들의 조직 문화와 조직력은 이전의 중국 통일 왕조들보다 정교하고 견고해졌다. 그들이 축적한 부는 종종 정부를 통제하는 관료들이나 학자들의 부와 필적했다. 그들의 조직력과 상업 기술에 대하여 Ebrey, Walthall 및 Palais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소유주 (주주)와 관리자를 분리 하여 파트너십 및 주식 회사를 설립한다. 대도시에서는 판매되는 상품의 종류에 따라 상인들이 길드를 조직한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도매상에서 상점 주인에게 판매를 주선했다. 정부가 물품을 요구하거나 세금을 부과 할 때 길드장을 상대했다.

송 시대에는 대규모 정부가 운영하는 산업과 대규모 민간 기업이 중국 도시의 시장 시스템을 지배했지만, 그 시대의 경제 호황을 불러 일으킨 대규모 교외와 농촌 지역에는 수많은 소규모 민간 기업과 기업가가 있었다. 송 시대에 중국에는 대규모 암시장이 있었는데, 여진이 중국 북부를 정복하고 금나라를 세울 때, 세력이 커졌다. 예를 들어 서기 1160년경에 연간 약 70 ~ 80만 마리의 소를 밀수하는 암시장이있었다.

 
송나라 지폐

금융 편집

지폐와 어음이 등장했고 활발히 사용됐다.

교역 편집

국가가 과도하게 민간의 경제활동에 간여하거나 세금을 과중하게 거둬들이면 위축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송나라는 이런 관점에서 매우 균형 잡힌 정책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의하면 송나라가 교역 상품에 대해 부과한 세금은 2~5%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국가에 의한 관리와 통제가 수월하지 않았던 시대의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그다지 높은 과세라고 보기 어렵다.

송나라 정부는 민간 경제 활동을 장려하여 조금씩 자주 세금을 거두는 것이 과도한 세금으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전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해외무역에 나간 배가 1년 만에 돌아오면 정상적인 세금을 매겼다. 하지만 5달 안에 귀국하면 세금을 깎아 주었고, 1년을 넘기면 관료들이 조사에 나섰다.[3]

철 생산량 편집

연간 철 생산량은 12만 5천t으로 산업혁명기 영국을 약간 밑도는 정도였다.[5]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The Song Dynasty in China | Asia for Educators”. 2020년 11월 5일에 확인함. 
  2. “国学网--中国经济史论坛 - 宋史地位应充分肯定”. 2011년 7월 16일. 2011년 7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11월 5일에 확인함. 
  3. “[조홍식의 부국굴기(富國屈起) | 자유시장경제의 원류를 찾아서(4)] 중국 송나라가 낳은 인류 최초의 화폐 경제”. 2019년 3월 17일. 2020년 11월 5일에 확인함. 
  4. “에도시대 세계최초로 선물거래 이끈 요도야”. 2019년 8월 1일. 2020년 11월 5일에 확인함. 
  5. 수정 2018.09.16 23:37, 입력 2018 07 29 02:00 (2018년 7월 29일). “산업혁명 500년 전 영국보다 잘 살았던 송나라, 왜 망했나”. 2020년 11월 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