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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5·4 전투한국 전쟁 발발 전 1949년 5월 4일 개성부 송악산 고지에서 벌어진 국지적 전투이다.

송악산 5·4 전투
장소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승리
교전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대한민국 김석원 제1사단장 준장
대한민국 최경록 제11연대장 대령
대한민국 노재현 포병 제6대대장 대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현 38선 경비여단장
병력
한국군 제1사단 조선인민군 38선 경비여단

1948년 11월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장 김석원 준장과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은 수원에서 문산으로 이동해 미군으로부터 인계받은 고랑포에서 청단에 이르는 38선 경비 구역을 담당하고 있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인민군 38선 경비여단장 최현이 38선 송악산 방어를 책임지고 있었다.

당시 개성은 38선이남에 속해있었지만 개성 인근 송악산부터 38선 이북에 속하였다.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군에 전략적 고지인 송악산 점령을 명령한다.

1949년 4월 남천점(南川店)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인민군 경비여단 제3연대의 3개 중대 병력 1000명은 송악산 후방에 집결했다가 5월 4일 새벽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하여 국군 제2연대 대대병력이 지키고 있던 38선 남방 일대의 292고지, 유엔고지, 155고지, 비둘기 고지 등 4개 고지를 점령했다.[1][2]

이에 한국군은 10개소 토치카 파괴를 위해 육탄 공격을 감행했는데 사단 시설장교 박후준 소위의 고안으로 81개의 박격포탄과 폭약을 장치하고 김성훈 소위의 제1소대 서부덕 이등상사와 김종해,윤승원,이희복,박평서,황금재, 양용순,윤옥춘,오제룡 등 9명의 용사가 선발되었다.

이들은 300m까지 진격해 10개의 토치카를 모두 박살냈고 영등포에서 급히 올라온 노재현 대위의 포병 제6대대 등 모든 화력이 엄호 사격을 가했다. 이에 앞서 낮 12시경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단독으로 수류탄 7개를 들고 조선인민군의 토치카를 파괴해 박창근과 9명 용사를 합해 육탄 10용사라 부른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은 1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조선인민군은 13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결국 승리했고 한국군은 송악산 탈환작전 실패했으며 결국 패배했다.

기념물편집

송악산 전투에서 81mm 박격포탄을 안고 적 토치카로 뛰어들어 전사한 10명의 국군 중 하나인 이희복의 동상이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한얼공원에 세워졌다.

또한 2001년부터 육탄 10용사 상이 제정되어 시상되고 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