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수왕 리마오(壽王 李瑁, 720년 ~ 775년)는 중국 당나라황족 종실이며 당 현종 이융기의 서자(庶子)이다. 아명(兒名)은 리칭(李淸)·리창(李琩)이며 725년 리마오(李瑁)로 개명(改名)하였다. 불교 승려 법명치룽(岐溶)이다.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수왕 이모
壽王 李瑁
지위
수왕(壽王)
이름
이모
李瑁
별호 아명(兒名)은 이청(李淸)·이창(李琩)
불교 승려 법명은 기용(岐溶)
신상정보
출생일 720년
출생지 당나라 산시 성 장안
사망일 775년 (55세)
사망지 당나라 허난 성 뤄양
왕조 당나라
가문 唐 帝國 李氏 皇室
부친 당 현종 이융기
모친 후궁 혜비 무씨(생모)
원헌황후 양씨(적모)
배우자 측실 8명(측실 위씨 이외에도 7명 측실)
자녀 슬하 5남 22녀
기타 친인척 당 숙종 이형(이복 형)
종교 불교
정당 무소속

생애편집

13세 시절이던 733년에 1년 연상 환속녀 양 위환(귀비 양씨)과 결혼하였고 16세 시절이던 736년 후실 위씨(後室 韋氏)를 측실(側室)로 들였지만 738년 1월 5일, 모후 후궁 무혜비 훙서 후에 740년 아직도 여색을 자제치 못하던 부황 당 현종 이융기에게 끝내 본부인 귀비 양 위환(양귀비)을 부황 당 현종의 측실로써 빼앗긴다. 그 시절 21세였던 수왕 이모는 그 시절까진 양귀비와의 사이에서는 아직도 자녀가 없었지만 측실 위씨(側室 韋氏)를 비롯한 측실 2명의 사이에서는 서얼 자녀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왕 이모 그는 부황 당 현종 이융기에게 본부인 양위환을 빼앗기고 측실 2명, 서얼 자녀들과 함께 황궁 궁궐과 사저 바깥으로 모두 축출되어 끝내 치룽(岐溶)이라는 승려 법명으로써 불교 승려 출가를 하였다. 그렇지만 황궁 궁궐과 사저에서 모두 쫓겨나 불교 승려 출가 이후로도 그는 자유 축첩(自由 蓄妾)을 일삼으면서 일평생 동안 슬하 5남 22녀(27남매)를 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