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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랑 강간 사건

스마랑 강간사건은 일본군 점령 중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Semarang)에서 벌어진 일본군 군인의 네덜란드 여성 강제연행·감금·강간 사건이다. 전시 일본군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우익 일각에선 백인 여성들을 차별적으로 '백마'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해 '백마사건'(白馬事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요편집

1944년 2월 일본군 남방군 관할의 제16군 간부후보생 부대가 민간인 억류소 3곳에서 네덜란드인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한 뒤 스마랑에 있던 위안소에 감금하고 강제로 매춘을 시키고 강간한 사건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에 따르면 당시 스마랑에는 이미 위안소가 있었지만 성병이 만연하자 일본군은 새로운 위안소를 설치할 계획을 세웠고, 장교 여러명과 위안소 업자가 여러 억류소에서 17~28세의 네덜란드인 여성 35명을 연행한 뒤 스마랑 시내의 건물에서 일본어로 적힌 취지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하고 스마랑에 있는 위안소 4곳으로 연행했다.

여성들은 1944년 3월1일부터 매일 강간당했다. 급료는 받지 못했고, 폭행을 당하거나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일본군 사령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당사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요시미 교수는 해당 책임자가 오히려 출세했다고 증언했다.

종전후 1948년 바타비아 군법회의에서 11명이 유죄 선고됐다. 책임자인 오카다 게이지(岡田慶治) 육군 소좌에게는 사형이 선고됐다. 재판에서는 35명 중 25명이 강제연행됐다고 인정됐다.

아사히신문이 1992년 네덜란드 국립공문서관에서 사건 관련 판결문과 법정심문서를 입수해 보도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네덜란드 정부가 고노 담화가 발표된 이듬해인 1994년 1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자행한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연행한 약 8건의 사건들을 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전모가 드러났다.

바타비아 군법회의편집

스마랑 사건을 단죄하기 위해 전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의 옛 이름)에서 열린 전범 군사재판이다. 1948년 당시 재판에서 사형 1명을 포함 일본군 장교 7명과 군속 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바타비아 군사재판 판결을 수락했다.

평가편집

스마랑 사건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내 `고노담화 수정파'들조차도 부인하기 힘든 강제연행의 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례로 자민당의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은 2007년 3월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정부에 재조사를 촉구하는 `제언'을 하면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은 스마랑사건 한건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1]

참고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