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사노르(고대 그리스어: Στασάνωρ, 라틴어: Stasanor, 기원전 4세기경)는 키프로스 솔리 출신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의 괸리들 중 뛰어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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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사노르는 마케도니아인이 아닌 키프로스의 솔리 사람이다. 그의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박트리아의 전투 사이이며, 그는 알렉산더에 두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한 아레이오이(또는 아리아) 태수 아르사메스를 체포하기 위해, 파르티아 태수 프라타페르네스와 함께 그 땅에 파견되었다.[1] 그리고 기원전 328년 가을에 프라타페르네스와 함께 그는 아르사메스와 과거 베소스에 의해 파르티아의 태수로 임명된 브라자네스 등 베소스 함께 알렉산더에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연행하고 자리아스파에서 알렉산더와 합류했다.[2] 그때 스타사노르는 아레이오이 태수가 된 것이며, 이어 아르사메스의 후임으로 드란기아나를 태수령으로 추가했다.[3][4] 스타사노르는 프라타페르네스와 함께 인도에서 알렉산더의 귀환에 즈음하여 낙타 등의 짐승을 제공했고 카르마니아로 왕이 모였다.[5] 그리고 알렉산더가 페르시스로 돌아가자 일을 위해 다시 영지로 돌아왔다.[6]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의 사후에 개최된 바빌론 회의에서는 스타사노르는 드란기아나 태수 지위를 유지했다.[7] 기원전 321년 트리파라디소스의 분할 협정에서 더 중요한 박트리아소그디아나의 태수로 임명되었다.[8]

여기에서 그는 몇년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무렵 에우메네스안티고노스의 항쟁에서 에우메네스에 가담한 것으로 추측된다.[9] 기원전 316년에 안티고노스는 에우메네스를 제거할 수 있었지만, 스타사노르는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그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태수령을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관용 조치를 취한다.[10]

이후 스타사노르의 이름은 다시 역사에 나타나지 않지만, 유스티누스기원전 305년셀레우코스 1세박트리아를 침공했다고 기술하고 그 때[11], 스타사노르 또는 그의 후계자에 의한 저항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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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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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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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리아노스, III. 29
  2. ibid, IV. 7
  3. ibid, IV. 18
  4. 쿠르티오스, VIII. 3. 17
  5. 아리아노스, VI 27
  6. ibid, VI 29
  7. 디오도로스, XVIII 3
  8. ibid, XVIII 39
  9. 유스티누스, XLI 4
  10. 디오도로스, XIX 48
  11. 유스티누스, XLI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