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라 (Singara, 고대 그리스어: τὰ Σίγγαρα 타 싱가라[*])[1]메소포타미아 최북단에 위치한 극도로 요새화된 군 주둔지이며, 발견된 주화들에서 나타났듯이, 한동안 이곳은 페르시아에 맞선 전진 식민지로서 로마가 점거하고 있었다. 또한 파르티카 제1군단의 주둔지이기도 하였다.[2]

4세기 로마의 원본 지도의 중세 복제본인 포이팅거 지도에서 싱가라.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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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비스 남동쪽에 있다고 하는 싱가라의 위치는 보통 고대 저술가들이 정의내린 것으로, 비잔티움의 스테파누스는 ‘에데사 근처’ 아라비아 도시라 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티그리스강에 있다고 하였다.[3] 그렇지만 싱가라와 싱가라와 인접한 산(고대 그리스어: ὸ Σίγγαρας ὄρος, ò Síngaras óros)[4]이 오늘날 이라크니네베 평야에 있는 신자르신자르산의 전신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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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트라야누스의 동방 원정 기간에 루시우스 퀴에투스가 114년 겨울에 교전 없이 점령하면서 처음으로 로마군에 점거되었다.[5] 117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군이 철수하면서 싱가라는 버려졌지만, 197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파르티아 원정으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다시 한번 되었다. 고르디아누스 3세 치세 이곳에서 발행된 주화들 일부에서 발견된 문구[도시의 라틴어 이름(Aurelia Septimia Colonia Singara)에 대한 그리스어 표기(고대 그리스어: ΑΥΡ. ϹΕΠ. ΚΟΛ. ϹΙΝΓΑΡΑ.)]에서 확인되었듯이 세베루스는 싱가라를 콜로니아 지위로 상승시켰다. 이곳은 3세기 동안에 로마 제국의 극동쪽에 위치한 전진 기지 중 하나로 있었다. 이곳은 사산 제국의 왕 샤푸르 2세가 이끄는 344년의 포위전 기간에 일어난 유명한 야간 전투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했는데, 이때의 전투 결과는 양 측이 승리를 주장하는등 서로에게 아주 만족스럽지 못했다.[6][7][8] 그럼에도 그 뒤에, 콘스탄티우스 2세 치세 기간인 359/360년에, 싱가라가 거주민들과 두 개 군단이 용맹하게 지키고 있었음에도, 유명한 공방전을 치렀고, 결국엔 페르시아군의 맹공격 끝에 점령되었다라고 기록되었다.[9]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테오필락토스 시모카테스 등은 싱가라 주변 일대가 극도로 건조하며, 이런 점이 이곳을 먼거리에서 차지하거나 해방시키기 어렵게 하였다고 언급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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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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