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 (조선)
안지(安止, 1384년[1] ~ 1464년 8월 4일)는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생애 편집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2]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세종 때 수찬·예문관 제학 등을 지냈으며 정인지와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1446년 호조참판으로 정조사가 되어 명에 다녀왔다.
1447년(세종 30) 공조판서(工曹判書), 이듬해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1455년(단종 3)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1461년(세조 7)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를 거쳐 1463년(세조 9) 검교영중추원사(檢校領中樞院事)에 이르렀다.[3][4][5]
시에 능했으며 해서를 잘 써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해 《금자 법화경》을 썼다.
가족 관계 편집
- 아버지 : 안사종(安士宗)
- 부인 : 송충손(宋忠孫)의 딸
- 딸 : 황맹수(黃孟粹) 우주황씨
- 부인 : 송충손(宋忠孫)의 딸
각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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