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폴랸스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폴랸스키(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олянский, 1903년 6월 22일[1] ~ ?)는 1945년 해방 당시 서울 주재 소련 영사였다.[2][3][4]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크리보로즈스키 지역(Krivorozhsky region) 출신이다.[1]

생애 편집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45년 해방 당시 서울 주재 소련 영사로서 부영사 아나톨리 샵신(Анатолий Шабшин, 1910 ~ 1967)과 함께 소련 또는 평양 소련군정의 의사를 남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서울의 소련 영사관은 소련에 대한 우호적인 유인물을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하고, 소련 영화를 들여와 상영하면서 소련 체제를 선전하는 첨병 역할도 했다. 소련 영화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4] 1946년 7월 2일 서울 소련 영사관의 폐쇄로 인하여 폴랸스키도 영사관 직원들과 함께 평양으로 갔다.[5]

그는 1945년 10월 극동회의 정치고문 말리크(Yakov. A. Malik)[6]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소련군사령부의 지도와 감독하에 북한의 행정 경제생활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단일한 중앙집권적인 관리기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7]

1945년 12월 초 한국민주당 당수 송진우는 소련 영사관으로 폴랸스키를 방문하여 북한 지역에서의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의 행동과, 북한지역 주민들을 탄압하는데 대해 항의를 하며 소련군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폴랸스키는 이런 의견을 자기 나라에 잘 전달하겠다고 정중하게 답했다고 한다.[8][9] 그 직후 송진우는 신탁통치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어난 반탁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12월 30일 새벽 암살 당했다.

참고 자료 편집

(Alekseev M.A., Kolpakidi A.I., Kochik V.Ya. Encyclopedia of military intelligence. 1918-1945 M., 2012, p. 615.)

각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