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크냐지닌

야코프 보리소비치 크냐지닌(러시아어: Яков Борисович Княжнин, 1742년 11월 3일 프스코프 ∼ 1791년 1월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은 러시아의 저자이다.

생애 편집

1742년 프스코프 주(州) 부지사 아들로 태어나 17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 부설 김나지움에 입학, 몰리에르, 코르네유와 더불어 프랑스 3대 극작가라 부르는 장 라신의 작품을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그는 1757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1762년에는 입대했으며, 1764년부터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외무성에서 근무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크냐지닌은 수마로코프의 사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인 수마로코프의 딸과 결혼해서 살다가 도박으로 국고 6000루블을 탕진하는 큰 죄를 짓게 된다. 국고를 횡령한 죄로 사형을 언도받지만, 1767년에 발표한 첫 번째 비극 <디도나(Дидона)>에 감명을 받은 예카테리나 2세의 특별 사면을 받았다. 대신 군대 계급과 귀족 신분은 박탈당했고, 모든 재산은 국가에 압류되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뒤 크냐지닌은 문학에 매진했다. 1777년에 이르러 그의 지위가 복권되었다.

크냐지닌은 장인어른 수마로코프의 작법에 따라 희가극 8편, 희극 4편, 비극 8편을 썼다. <블라디미르와 야로폴크(Вл-адимир и Ярополк)>(1772), <로스슬라프(Росслав)>(1784)와 <노브고로드의 바딤(Вадим Новгородский)>(1789)을 통해 비극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희극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허풍쟁이(Хвастун)>(1785)와 코미디 오페라 <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Несчастие от каре-ты)>(1779)은 고골과 그리보예도프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러시아 문학사가 미르스키는 크냐지닌의 비극에 대해 혁명적 자유사상을 내뿜는다고 평가했다.

외부 링크 편집

    본 문서에는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CC-BY-SA 3.0으로 배포한 책 소개글 중 "노브고로드의 바딤/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 의 소개글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