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토 타모츠

일본의 사진가

야토 타모츠(일본어: 矢頭 保 (やとう たもつ) 야토 다모쓰[*], 1925년? ~ 1973년 5월 20일)는 일본사진가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태생이다. 본명은 다카다 미쓰오이며, 일본의 메일 누드(Male Nude, 남성 누드 예술 사진)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야토 타모츠
矢頭保
기본 정보
본명다카다 미쓰오
출생일본 효고현
성별남성
국적일본
활동 정보
분야남성 누드 사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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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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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경 니시노미야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뚜렷한 성장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남자 연구생으로 들어가 그 외양과 남성적인 체격으로 일제 타잔이라고 불렸으나, 1954년 경에 경연극 집단 다카라즈카 신예 자리로 이동하였다. 춤이 주특기였기 때문에, 그 후에는 기타 극장 무용 팀으로 갔다.

1956년 경 도쿄로 상경하여 닛카츠에 들어갔고, 1958년부터 다카다 다모츠, 1961년부터는 야토 다케오의 예명으로 액션 장면 등에 출연했다. 1959년 하야마 료지, 아카기 케이치로 주연의 <대학의 망나니>에서 족제비승으로 출연하고, 아카기 케이이치로와 격투 장면을 연기했다. 이 격투 장면에서는 그의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도쿄에 거주하는 미국인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의 번역자이자 출판사 웨자히루의 경영자인 전 미군 정보 장교 메레디스 웨더비(Meredith Weatherby, 일명 텍스 웨더비)와 신주쿠의 게이바에서 만나 하디 배럭(NSA 미국 국가 안전 보장국)이 위치한 아자부류도쵸(현재의 롯폰기 7가)에 있던 웨더비의 저택에 동거하며 비호를 받게 된다. 이 저택에는 한때 영화 평론가 도널드 리치도 거주하고 있었다.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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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토 타모츠는 웨더비를 통해 사진과 예술의 세계를 알고 사진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나 예술가 등 문화인과도 교류가 시작되면서 미시마 유키오와도 친교를 쌓게 되었다. 미시마는 야토가 제작한 일본 최초의 게이 사진집으로 알려진 《체도: 일본의 바디빌더》(1966년)과 《하다카마츠리》(1969년)의 서문을 썼으며, 자신도 훈도시를 입고 모델이 되어 《체도: 일본의 바디빌더》에 사진을 실었다. 또한, 그의 할복 사진을 촬영한 것도 야토이다. 이 사진들은 미시마 유키오의 부탁에 따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개봉한 20세기 폭스의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는 스틸 사진 작가로 참가했으며, 웨더비도 이 영화에서 대사 역으로 출연했다.[1]

1970년에서 1971년 사이, 웨더비에게 새로운 애인이 나타나면서 그와의 동거가 끝나자, 야토는 웨더비 저택을 나와 다카다노바바에서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친하게 지냈던 미시마 유키오가 이 시기에 자살한 것까지 겹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와중에 컬러 사진 출판물(이전까지는 흑백 사진만 출판)을 계획하던 그는 1973년 5월, 수면 중 심장 질환으로 48세의 나이에 급사하였다. 친구였던 다카하시 무츠오는 당시 야토가 위험한 성생활로 고민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다.[2] 웨더비는 야토가 사망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장례는 일찍이 살고 있던 웨더비 저택 근처의 호안지에서 친한 친구들에 의해 거행되었다. 야토가 죽은 뒤 그의 친족은 작품의 발표나 사진집의 재판을 금지했다. 그들은 야토의 네거티브 필름이나 프린트를 모두 폐기 처리하였으나, 도쿄나 샌디에이고에 일부가 은닉되어 있다고 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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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redith 'Tex' Weatherby Archived 2013년 12월 7일 - 웨이백 머신 Aveleyman
  2. Interview with Takahashi Mutsuo  Gender, History and Culture in the Asian Con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