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록
양덕록(權應銖, 1546년 ~ 1608년)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정유재란 및 정묘호란에 의병장으로 참가하였다.
양덕록
楊德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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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무원종공신 | |
군주 | 명종 (조선) 선조 (조선) 인조 (조선) |
이름 | |
별명 | 자는 경유(景綏), 호는 회헌(悔軒)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53년 |
출생지 | 조선 평안도 중화군 |
사망일 | 1635년 |
사망지 | 조선 평안도 중화군 |
학력 | 사마시 합격 |
경력 | 학자 겸 의병장 |
생애
편집조선 평안도 중화에서 태어났으며, 양반 혹은 중인으로 추정되나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학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나이가 39살이 되던 해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평안도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나이 75살에는 정묘호란이 발생하여 문묘의 위패를 들고 유생들과 피난을 가기도 하였다.[1][2][3][4]
각주
편집- ↑ “양덕록(楊德祿)”.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 ↑ “임진왜란에서 밀리던 조선, 판세 뒤집은 한 남자”. 2016년 8월 5일.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 ↑ “제13회 의병의 날의 역사적 의의와 국가기념행사”. 2023년 6월 2일.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 ↑ “성씨정보 | 양덕록 (楊德祿) - 중화양씨(中和楊氏) :+: www.Surname.iNFO”.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