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양정수(楊正秀, 일본식 이름: 楊川正秀, 1912년 ~ 2004년 10월 9일[1])는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생애편집

평안남도 출신으로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를 졸업했다. 1940년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대구지방법원 사법관시보를 거쳐 대전지방법원 검사를 지냈다. 1943년을 기준으로 종7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57년 대한민국 검찰청 검사가 되었고,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과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맡는 등 대한민국에서도 검사로 근무했다. 부산지검장으로 있을 때 청사를 신축하면서 기성회비를 횡령한 혐의로 법원 직원 두 명과 함께 기소된 일이 있으나, 재판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2]

이후 변호사를 개업해 활동하였고, 1972년에 서울변호사회 회장에 피선되었다.[3] 1977년에는 제26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올라 1년 동안 재임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양정수 前 변협 회장 별세”. 조선일보. 2004년 10월 11일. A30면면. 
  2. “부산지검판사언도 楊正秀피고에 무죄”. 조선일보. 1963년 1월 16일. 7면면. 
  3. “서울변호사회총회 회장에 楊正秀씨”. 조선일보. 1972년 4월 30일. 7면면. 
전임
배영호
제26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1977년 5월 - 1978년 5월
후임
양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