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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삼(梁柱三, 일본식 이름: 梁原柱三, 1879년 평남 용강 ~ ?)은 일제 강점기조선 감리교회의 감독으로, 서울 종교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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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1938년 일본이 종교계에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때, “기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앞서서 국민”이라면서 신사참배를 찬성하였다. 양주삼의 이러한 행적은 신토를 앞세운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협조이기 때문에, 친일행적이라는 한국 개신교 교회 역사의 큰 오점을 남겼다. 이러한 친일행적이 광복 이후 출옥교인이나 그렇지 않은 교인이나 고생하기는 매한가지였다는 논리 하에 전혀 청산되지 못했음을 문제로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1939년 12월 18일 정동의 이화여전 강당에서 8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후원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12개조의 후원회 장정을 통과시키고 25명의 위원을 선출했다.[1] 양주삼도 이화여전 후원회 위원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1]

광복 직후 목회활동을 하다 대한적십자사 출범 이후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후 그는 대한적십자사 초대 총재를 지내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실종되었고,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양현혜, 《빛과 소망의 숨결을 찾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104쪽.

참고자료편집

전임
(신설)
제1대 대한적십자사 총재
1949년 10월 ~ 1950년 6월
후임
윤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