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越)의 호장(戶將)으로서 종군하여 진나라를 치고 한나라에 들어갔고, 삼진(三秦)을 평정하였다. 이후 도위 신분으로 항우를 친 공로로 세후(貰侯)에 봉해지고 식읍 1,600호를 받았다. 공적이 대야에 비견되었다.
고제 8년(기원전 199년)에 죽어 시호를 제(齊)라 하였고, 아들 여방산이 작위를 이었다.
- ↑ 이는 《수경주》 탁장수(濁漳水)조의 기록으로, 사기에서는 제후 여(齊侯呂), 한서에서는 제합후 부호해(齊合侯傅胡害)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왕선겸은 吕의 이체자 台가 合으로 잘못 전해진 채 한서에서 글자의 위치마저 잘못 들어가고, 이름자 博은 傅로 잘못 전해지고, 거기에 胡害가 잘못 들어가 '제합후 부호해'로 둔갑된 것이며, 사기에서는 이름자 博만 누락된 것으로 고증하였다.
선대 (첫 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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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세후 기원전 201년 3월 경자일 ~ 기원전 1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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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아들 세공후 여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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