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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비를 받쳤던 귀부, 이수와 비신이다. 1963년 1월 21일 귀부와 이수가 대한민국보물 제6호로 지정되었고, 2016년 12월 15일 여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비신을 추가하여 지정하였다.[1]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6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수량1기
시대고려시대
소유국유
위치
여주 고달사지 (대한민국)
여주 고달사지
주소귀부,이수: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9-3번지
비신: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6-12 여주박물관
좌표북위 37° 23′ 34″ 동경 127° 39′ 15″ / 북위 37.392778° 동경 127.654167°  / 37.392778; 127.654167좌표: 북위 37° 23′ 34″ 동경 127° 39′ 15″ / 북위 37.392778° 동경 127.654167°  / 37.392778; 127.65416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975년에 세운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혔던 이수이다. 1915년 봄에 넘어져 8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현재 여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비신없이 귀부와 이수만 맞물려 있다. 원종대사부도비 귀부와 이수는 현존하는 한국 귀부와 이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태산 같은 힘을 분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각이 깊고 뚜렷하여 귀부의 튀어 올라온 거북등만 보아도 그 힘을 당할 장사가 천하에 없을 듯이 보인다. 치켜 올라간 꼬리가 험상궂기 이를 데 없고, 콧등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코를 벌름거리며 눈을 부릅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여의주를 물지 않은 게 특이하다.

비신편집

1915년 봄에 넘어져 8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었다가 현재 여주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279cm, 너비 162cm, 폭 31cm에 이르는데, 이를 보존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2010년 11월 25일 개최된 문화재위원회에서 원종대사혜진탑비의 비신을 복제하여 복원하고, 원 비신을 여주박물관 실내에 전시하는 방안이 가결됐다.[2]

2016년 12월 15일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가 비신을 제외한 귀부와 이수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에 있던 비신을 추가 지정하고, 여주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1]

현지 안내문편집

이 귀부(龜趺)와 이수(이首)는 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석 위에 얹혔던 이수이다.[3]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身石)은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 서쪽화랑(西廻廊)에 진열되어 있으며, 이곳 고달선원(高達禪院) 절터에는 귀부왕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원종대사(元宗大師)는 신라(新羅) 경문왕(景文王) 9년(869) 13세에 출가하여 상주(尙州) 공산(公山) 삼랑사(三郞寺)에서 융제선사(融제禪師)에게 사사(師事)하였다. 22세에 양주(楊州) 삼각산(三角山) 장의사(藏義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23세에 입당(入唐)하여 서주(舒州) 동성현(桐城縣) 적주산(寂住山)에서 자선화상(子禪和尙)에게 사사(師事)하였으며 경명왕(景明王) 5년(921)에 환국(還國)하여 봉림사(鳳林寺)에 거주(居住)하였다.[3]

그후 광주(廣州) 천왕사(天王寺)에서 고려(高麗) 광종(光宗) 9년(958) 8월에 90세로 입적(入寂)하니 왕이 애도(哀悼)하여 원종대사(元宗大師) 혜진(慧眞)이라 추시(追諡)하고 진영일정(眞影一幀)을 그리게 하였으며 대사(大師) 입적 후 17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3]

귀부(龜趺)는 거대한 단일석(單一石)으로 조성되고 6각 귀갑문(龜甲紋)이 장식되어 있으며 장방형(長方形)의 비좌(碑座)는 운문(雲紋)이새겨져 있는 연화좌(蓮華座) 위에 조출(彫出)되고 상면(上面) 둘레에는 복련문(覆蓮文)이 조출되어 있다. 네 다리와 손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이며 예리하나 귀두(龜頭)의 면모(面貌)는 흔히 볼 수 있는 용형(龍形)이다.[3]

이수(이首)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寶珠)가 꽂혔던 흔적으로 보인다.[3]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6-121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보물 지정내용 변경》, 문화재청장, 관보 제18907호, 111-112면, 2016-12-15
  2. 여주군 (2010년 11월 29일).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비 비신’여주로 돌아온다”. 경기 뉴스. 2014년 1월 25일에 확인함. 
  3.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