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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烈女)는 조선시대에 절개가 곧은 여자를 이르던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여성 최고의 미덕으로서 한 남자만을 섬기는 절개를 꼽았다. 여성이 재혼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으므로, 남편이 죽은 후 오랜 세월 홀로 살아야 했다.

조선사회는 삼강행실도를 간행하는 등 열녀를 장려했는데, 이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을 공동체 남성들이 남편을 잃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러한 경우에도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절개를 잃었다며 목숨을 끊도록 강요당한 것.[1] 또한 여성이 재혼하는 경우 자손들의 벼슬길이 막히는 등 당시 여성들은 법적으로 핍박을 당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열녀관으로 인해 많은 여성이 불행하게 살았다. 심지어 열녀문을 하사받으면 큰 포상과 함께 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졌기에 마을 주민들, 혹은 가문 사람들이 여성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실학자 박지원은 열녀의 순절행위를 "광명한 햇빛을 스스로 꺼버리는 일인데 어찌 장려하는가?"라 비판했고, 정약용 역시 "목숨을 끊으면 온 가족이 슬퍼한다."며 사회의 열녀 신드롬을 비난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