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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공주(榮壽公主, 1854년 2월 28일 ~ 1924년 2월 29일)는 중국 청나라 제9대 황제 문종 함풍제(文宗 咸豊帝)의 이복 조카딸이며 황족 종실 공충친왕(恭忠親王)의 장녀(長女)이다. 도호(道號)는 산난(山南, 산남)이다. 어린 시절 이복 백부 함풍제의 총애를 받은 그녀는 또한 서태후의 수양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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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고륜공주
榮壽固倫公主
荣寿固伦公主旗装照.jpg
지위
황족(皇族)
신상정보
출생일 1854년 2월 28일
출생지 청나라의 기 청나라 즈리 성 베이징
사망일 1924년 2월 29일(1924-02-29) (70세)
사망지 중화민국의 기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펑톈에서 만성 소갈증으로 병사
왕조 청나라의 기 청나라
부친 공충친왕(恭忠親王)
모친 적복진 구왈기야씨(嫡福晉 瓜爾佳氏)
배우자 푸차 즈돤(富察 志端)
자녀
기타 친인척 함풍제(이복 백부)
순현친왕(이복 숙부)
동치제(사촌 남동생)
광서제(사촌 남동생)
이혁단군왕(6촌 남동생)
순친왕 짜이펑(사촌 남동생)
선통제 푸이(친정 5촌 종질)
보국공 푸쥔(친정 7촌 재종질)
종교 도교불교

생애편집

결혼편집

푸차 즈돤(富察 志端, 부찰 지단)과 1866년 5월 26일에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한 채 1871년 7월 5일부군(夫君)과 사별하였다.

그녀의 친정인 황실의 배경편집

그녀는 어렸을 때 이복 백부 함풍제(咸豊帝)의 총애를 받았으며 1861년 이복 서백부 함풍제가 붕어하고 사촌 남동생 동치제(同治帝)가 1861년 8월 22일에서 1874년 12월 17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861년 8월 22일에서 1861년 9월 10일까지 방계 족조부 이혁보국군왕(已革輔國郡王)이 섭정하였고 1861년 9월 10일에서 1861년 11월 8일까지 방계 친척 오라비 이혁친왕(怡革親王)이 섭정하였으며 1861년 11월 8일에서 1861년 12월 15일까지 방계 족조부 이혁정친왕(已革鄭親王)이 섭정하였고 1861년 12월 15일에서 1863년 3월 3일까지 아버지 공충친왕(恭忠親王)이 섭정하였으며 1863년 3월 3일에서 1870년 3월 3일까지 이복 백모이며 함풍제계후동태후(東太后, 동치제의 적모이자 광서제의 큰숙모)가 섭정하였고 1870년 3월 3일에서 1873년 3월 3일까지 함풍제후궁 서태후(西太后, 동치제의 모후이자 광서제의 이모)가 섭정하였으며 1873년 3월 3일에서 1874년 12월 17일 사촌 남동생 광서제(光緖帝)에게 보위가 선위(禪位)될 때까지 동치제가 친정을 하였고 이듬해 1875년 1월 12일 동치제천연두로 인하여 19세로 붕어하였다.

친정 친족들인 네 황제들의 총애와 공경을 받은 황족 여인의 말로편집

그녀는 청나라 제9대 황제 함풍제 생전에 친정 이복 큰아버지 함풍제의 총애를 받았고 청나라 제10대 황제 동치제 시대에도 친정 사촌 남동생인 동치제의 총애와 공경을 받았으며 청나라 제11대 황제 광서제 시대에도 친정 사촌 남동생인 광서제의 공경을 한몸에 받고 1898년 5월 29일을 기하여 친정아버지 공충친왕의 상(喪)을 치렀으며 청나라 제12대 황제 선통제 시대에도 친정 5촌 조카인 선통제 푸이(宣統帝 溥儀)의 공경을 받는 등 청나라 황실 여인의 원로로서 예우되었으나 1911년에 만성 소갈증을 앓기 시작하고 이듬해 1912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며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화민국 즈리 성 베이징에서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펑톈 성 펑톈으로 퇴출 추방되어 그곳에서 투병하다가 1924년 7월 5일, 그곳에서 향년 70세로 훙서(薨逝)하였다.

그녀의 수양어머니 서태후편집

영수공주도 처음에는 성품이 서태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장차 그녀는 남편 푸차 즈돤을 만나면서 성품이 바뀌었으나 수양어머니(서태후)가 영수공주의 변화를 알고 푸차 즈돤을 독살로써 죽여버렸으며 그 외에도 수양어머니(서태후)에게 반항하였으나 서태후를 이길자는 없었다. 결국 영수공주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녀로써 서태후 곁에서 머물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가족 관계편집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