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衛滿, 기원전 227년 ~ 기원전 147년경, 재위: 기원전 194년경 ~ 기원전 147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燕)나라 사람으로 고조선에 망명하여 준왕(準王)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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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
衛滿
지위
위씨 고조선의 1대 국왕
대관식 위만(衛滿)
전임 준왕(단군조선)
후임 (2대)불명
(3대)우거왕
부왕 ?
재위 기원전 194년경~기원전 147년
이름
위만(衛滿)
별호 없음
연호 없음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신상정보
출생일 기원전 227년
출생지 ?
사망일 기원전 147년
사망지 ?
매장지 없음
왕조 고조선(古朝鮮)
가문 ?
부친 ?
모친 ?
배우자 ?
종교 없음

생애편집

위만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영역에 살던 사람이다[1]. 기원전 195년경에 전한(前漢)의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모반하여 흉노로 망명할 무렵에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위만은 준왕에게 서쪽의 번병(藩屛)이 되기를 청하였고 준왕은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아 100리의 땅을 주고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변방을 지키면서 연(燕)의 망명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웠으며 기원전 194년 무렵에 수도인 왕검성을 공격하여 준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위만은 형식적으로 한나라의 외신(外臣)이 되어 그 대가로 병력과 재물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여 복속시켜 수천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적 문제편집

현전하는 사료에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사학의 일환으로 연나라의 위만이 고조선을 식민통치한 것이라 평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신채호는 위만이 찬탈한 지역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평하기도 했다. 이병도는 위만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옷을 입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위만이 조선인 유민 출신이라 추측하였다. 고조선이 연나라의 장수 진개침공때문에 랴오둥 반도를 빼앗겼을때도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지 않고 그 지역에 남아 그대로 연나라 사람으로 흡수된 조선인이라고 본 것이다. 연나라가 있었던 요동지역은 원래 중국의 영토가 아니고 나중에 진나라대 와서야 중국에 편입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연나라는 원래 북경을 포함하는 하북성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굳이 요동출신이 아니더라도 연나라 사람일 수 있다. 물론 요동출신도 연나라 사람이다.

일제시대 학자들은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중국의 식민 정권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만이 조선을 통치해도 국호나 정치체제·수도 등을 옮기지 않은 채 기존 고조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므로, 지배층이 중원 출신이라고 해도 국가의 정체성은 고조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연나라의 지배층과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의 연합 정권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가계편집

  • 아들 : 불명
  • 손자 : 우거왕(右渠王)

각주편집

  1. 朝鮮王満者故燕人也 - 史記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전대
준왕 {고조선}
제1대 위만조선 국왕
기원전 194년 ~ 기원전 2세기
후대
(2대) 미상
(3대) 우거왕
전임
준왕
한반도의 국가 원수
기원전 194년 ~ ?
후임
미상
우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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