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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헌(尹益憲, ? - 1951년 8월 12일일제 강점기[1] 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 군인이다. 해방 후에는 우익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국민방위군의 부사령관으로 특별히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 비리 사건에 가담하여 비리행위를 획책한 죄로 사령관 김윤근외 4명과 함께 전격 처형되었다. 경기도 출신이다.

생애편집

윤익헌은 경기도 용인군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보를 동맹휴학 사건으로 중퇴, 중국에서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지청천 장군 밑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했다. 해방 후에는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 한청 등에서 총무국장직을 역임했고, 김윤근과는 대동청년단 시절부터 함께 일했다.[1]

국민 방위군 참사는 방위군 부대의 운영을 이승만의 친위조직인 대한청년단과 그 청년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청년방위대에게 맡겼기 때문에 저질러진 사건이었다.[2]

윤익헌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한 후 귀국하여 청년 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청년단체의 총무부장을 두루 역임하였다.[1] 그가 때때로 명분이 분명치 않게 돈을 쓴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각종 청년단체의 총무부장을 역임한 이유는 "돈을 만들어 내는데 그와 맞먹는 사람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1]"라는 시각도 있다.

허나 훗날 조사에서, 한국 전쟁당시 하루 300만원(2015년 화폐단위로 환산하자면 60억이다.)씩 국민방위군에게 할당된 군인들의 보급과 식량비를 착복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징집된 60만에 가까운 국민방위군이 전쟁 기간동안 죽거나 사라진 인원이 대략 50만명이며 대부분은 지원받지 못해 굶어 죽었다는게 정설이다.

사건에 관련된 국민방위군 간부들은 군사재판(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그 결과 사령관 김윤근(金潤根), 부사령관 윤익헌(尹益憲), 보급과장 박기환 등 5명에게는 사형이 언도되어, 1951년 8월 12일 야산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각주편집

  1. 유영익, 한국과 6.25전쟁 (연세대학교출판부, 2002) 100페이지
  2. 사실 원래 책정된 비용마저 부족해서 대량의 아사자 발생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 고위 간부들은 그것마저도 횡령해서 피해규모가 몇배로 불어나게 되었다. 5명의 국민방위군 고위간부들이 횡령한 돈이 1951년 당시 화폐로 30억원이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