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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殷浩)(? - 356年)는 중국 동진(東晋)의 정치가 및 군인이었다. 자(字)는 연원(淵源)이다. 진군(陳郡) 장평현(長平県)사람이다. 한강백은 그가 귀여워한 조카이다.[1]

그의 어릴적과 말년의 형편은 좋지 않은것으로 여겨진다.[2][3]

죽마고우편집

죽마고우(竹馬故友)는 진(晉)나라 간문제때의 오래된 이야기이다. 이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을 가리킨다. 죽마고우의 표현은 은호(殷浩)와 환온(桓溫)이 어릴때 함께 자라면서 사귄 벗이란 뜻으로 환온(桓溫)이 사용하였지만 이때의 상황은 왕희지(王羲之)가 은호와 환온의 사이에서 이를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환온이 은호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사용한것으로 전해진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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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편집

  1. 而送別探望他的外甥韓伯時聽他詠「富貴他人合,貧賤親戚離」時亦哭起來。後來桓溫打算徵召殷浩作尚書令,並寫信徵求他的同意,殷浩大為高興,連忙回信表示接受,但殷浩擔心回信寫得不恰當,又拆信修改,閉開十數次,最後竟然只寄出空的信封,令桓溫十分不滿,殷浩最後沒有被徵召。永和十二年(356年),殷浩逝世。(晉書 殷浩專) 浩甥韓伯,浩素賞愛之,隨至徙所,經歲還都,浩送至渚側,詠曹顏遠詩云:「富貴他人合,貧賤親戚離。」因而泣下。後溫將以浩為尚書令,遺書告之,浩欣然許焉。將答書,慮有謬誤,開閉者數十,竟達空函,大忤溫意,由是遂絕。永和十二年卒。   子涓,亦有美名,咸安初,桓溫廢太宰、武陵王晞,誣涓及庾倩與晞謀反,害之。   浩後將改葬,其故吏顧悅之上疏訟浩曰:   伏見故中軍將軍、揚州刺史殷浩體德沈粹,識理淹長,風流雅勝,聲蓋當時,再臨神州,萬里肅清,勳績茂著,聖朝欽嘉,遂授分陝推轂之任。戎旗既建,出鎮壽陽,驅其豺狼,翦其荊棘,收羅向義,廣開屯田,沐雨櫛風,等勤台僕。仰憑皇威,群醜革面,進軍河洛,修復園陵。不虞之變,中路猖蹶,遂令為山之功崩于垂成,忠款之志於是而廢。既受削黜,自擯山海,杜門終身,與世兩絕,可謂克己復禮,窮而無怨者也。尋浩所犯,蓋負敗之常科,非即情之永責。論其名德深誠則如彼,察其補過罪己則如此,豈可棄而不恤,使法有餘冤!方今宅兆已成。埏隧已開,懸棺而窆,禮同庶人,存亡有非命之分,九泉無自訴之斯,仰感三良,昊天罔極。若使明詔爰發,旌我善人,崇復本官,遠彰幽昧,斯則國家威恩有兼濟之美,死而可作,無負心之恨。   疏奏,詔追復浩本官。 https://zh.wikisource.org/wiki/%E6%99%89%E6%9B%B8/%E5%8D%B7077#%E6%AE%B7%E6%B5%A9
  2. (桓溫)少時吾與浩共騎竹馬,我棄去,浩輒取之,故當出我下也。
  3. (殷浩)富貴他人合,貧賤親戚離
  4. 《晉書》〈殷浩專〉浩少與溫齊名,而每心競。溫嘗問浩:「君何如我?」浩曰:「我與君周旋久,寧作我也。」溫既以雄豪自許,每輕浩,浩不之憚也。至是,溫語人曰:「少時吾與浩共騎竹馬,我棄去,浩輒取之,故當出我下也。」又謂郗超曰:「浩有德有言,向使作令僕,足以儀刑百揆,朝廷用違其才耳。」   浩雖被黜放,口無怨言,夷神委命,談詠不輟,雖家人不見其有流放之戚。但終日書空,作「咄咄怪事」四字而已。https://zh.wikisource.org/wiki/%E6%99%89%E6%9B%B8/%E5%8D%B7077#%E6%AE%B7%E6%B5%A9
  5. (世說新語) 品藻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