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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묘(李建昌 墓)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였던 영재 이건창(1852∼1898)의 묘소이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이건창 묘
(李建昌 墓)
대한민국 인천광역시기념물
종목기념물 제29호
(1995년 3월 2일 지정)
면적1기 / 241.5m2
시대조선시대
관리인천광역시 강화군청
위치
강화 건평리 (대한민국)
강화 건평리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665-1번지
좌표북위 37° 40′ 45″ 동경 126° 24′ 13″ / 북위 37.679192° 동경 126.403555°  / 37.679192; 126.403555좌표: 북위 37° 40′ 45″ 동경 126° 24′ 13″ / 북위 37.679192° 동경 126.403555°  / 37.679192; 126.403555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이건창묘
(李建昌墓)
대한민국 경기도기념물(해지)
종목기념물 제148호
(1994년 10월 29일 지정)
(1995년 3월 1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였던 영재 이건창(1852∼1898)의 묘소이다. 묘는 단분(單墳)이며 특별한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다. 이건창은 어렸을 때부터 강화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이시원으로부터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충의(忠義)와 문학(文學)을 배웠다. 5살 때 문장을 구사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고종 4년(1866) 15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고종 11년(1874)에는 사신을 수행하여 기록을 맡았던 서장관에 발탁되어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고종 12년(1875)에 충청도·전라도·경상도·황해도의 서쪽 지역에 파견되어 지방 관원들과 민생을 살피는 암행어사가 되었다. 또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함경도의 경성 이북을 다스리는 안무사에 올랐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로는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인 강화에 내려와 살다가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건창은 철저한 척양척왜주의자였으며, 한말의 대문장가인 김택영이 뽑은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에 포함 될 정도로 문장에 특출하였다. 저서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당의통략』 등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